창작글
길가의 은행잎
작성자 : 윤용혁
작성일 : 2006.11.28 12:57
조회수 : 1,613
본문
가을이 되면 병아리보다 더욱 노란빛을 띠는
그 무엇이 있었으니 소녀의 책갈피에 포로가
되는 은행잎이 오늘아침 출근길에 꽃 보라를
일으키며 길가에 수북이 내려앉고 있어요.
‘깅고 플라본’이라는 배당체로 인체의 피 돌림을
좋게 하는 은행잎이 어릴 적 너무 예뻐 한줌씩
주워들고 돈다발인양 기뻐하던 일도 있었지요.
이맘때면 파평윤씨 종친회의 시제가 은행낭골
조상들의 묘에서 성대히 열렸어요.
제사가 끝나면 제수 음식을 나누어 주었는데
연로하신 개성할아버지라는 분이 저를 귀엽게
여겨 떡과 과일을 다른 애들보다 더 많이 나눠
주셨어요. 그 자리에서 먹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먼지로 가득 찬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에게 상납하던 지난일이 새삼스레
떠올라 그 시절 그리며 미소 짓습니다.
은행낭골 수백 년 된 은행나무는 가을이면 은행과
노란 은행잎을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사촌
동생이 산소 갓에 불을 놓다 불이 번져 그 큰 나무를
태워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지요.
그래도 아직까지 살아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답니다.
그 은행나무를 기리며 시 한수 올립니다.
길가의 은행잎
글/윤 용 혁
초록머리 노랗게 물들인
가로수 악동들아!
일제히 등불 밝혀
길손 맞으라
펄럭이는 군무에 때 이른
노랑나비 떼들아!
부채 손 펼치어
가을을 환송하라
지난밤 내린 겨울비에
머리채 곱게 빗어
높바람에 실린 노란 은행잎
수북한 사연을 어느새
길가에 내려놓는다.
댓글목록 0
신형섭님의 댓글
尹 후배님! 은행잎 떨어진 거리를 심플 하면서도 운치 있게 그렸습니다.
최헌의 " 가을비 우산 속 " 노래가 생각나는 을씨년한 날씨 입니다.
장재학90님의 댓글
노랑나비 떼들아! 멋진 표현입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용혁님은 몇 안되는 인사동의 가곡파입니다..
이기호 67님의 댓글
은행하면, 뭐니 뭐니 해두, 율목동 1번지 울인고 교정에 심기운 아주 오래되구, 아주 키가 큰 은행나무들이 생각납니다. 은행잎 카펱 밟으며 등하교하던 추억!, 여름 체육시간에 뛰놀다가 은행나무 그늘에 읹아 쉬던 추억! 용혁후배님 땀시, 기쁜 우리 젊은날, 추억에 잠겨 보았읍니다. 감사!
윤인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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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문님의 댓글
오늘 이동열 DJ가 김장하러 배추 뽑으려 가는 바람에 용혁후배를 위해 내가 노래하나 올렸습니다..*^^*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母校 仁川高 栗木洞 1 번지, 母校 成均館大學校 서울 鍾路區 明倫洞 두 곳 모두 銀杏 나무 골 참으로 그리운 곳이다 日本 居住 當時도 銀杏 (은행 일어 발음-깅고)을 보며 日本人들과 더불어 즐겨워 하던 한 때도 있었다 용혁 아우님의 운치있는 글 또 다시 감사히 읽었습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율목동하면 누군가 홈피에 올렸던 글...감나무꼴...생각납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꼬리는...은행나무를 감나무로 진화케 하는 마력을 가집니다
이환성(70회)님의 댓글
감나무로 진화케 ==>밤나무!
김성수(94회)님의 댓글
길가엔 노랑은행잎이 수북 청소부아저씨들 쓰시느라 고생하십니다. ㅠㅠ--
이동열(73회)님의 댓글
은행잎을 책갈피에 꽂아 놓으면 책에 좀벌레등 해충이 접근 못한대죠??
김태희(101)님의 댓글
용혁님 시를 신변방에 같이 올려 주시니 좋네요. 예솔방이 멀지도 않건만 따로 찾아 가는 것이 번거로운 게으른(죄송) 분들 편히 감상할 수 있구요. 잘 생각하셨어요.
한상철님의 댓글
아! 넘 멋지다 운치 오랜만에 느껴봅니다
차안수님의 댓글
어제 길거리에 널려 있던 은행잎들이 청소부들께서 애써서 없애주셨더군요. 거닐고 싶었는데.... 선배님의 시귀에서 어제 못 느낀 은행잎의 감흥을 느낄수 있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