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慶州 의 追憶
본문
1968 년 10월 !
훗날, 榮辱의 期數 " INKO 69회 " 주인공 들에게
경주 와 양산 통도사 일원을 다녀오는 2박3일의 수학여행이 주어졌다.
오후 6 시 쯤, 동인천 역에서 200 여명이 넘는 단체 수학 여행단이 출발 하였다.
(저녁에 출발 한 것은 기차에서 1 泊을 하여 여행경비를 절약 하려는 알뜰 여행
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는 3박4일 이었슴)
당시 우리 69회 동지들은 文 보다는 武 를 선호 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물포 역에서 기차에 탄 ,서울에서 통학하던 선인高, 운봉高
선수들 하고 가벼운 몸싸움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훗날 씩스티-나인 이 될 사람들이 아니던가?
우리는 단체 였고 그들은 삼삼오오 였으므로 大馬不敗 원칙에 따라 우리가 압도
하여 그들을 물리치고 서울까지 갈 동안 열차는 우리가 장악했다.
그때 先導에 나서서 부월도를 휘두른 李 ** 동지, 지금은 어였한 기업가가 되어 인고 동창회
발전 및 지역사회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서울역에 도착한 우리는,
경주行 기차를 갈아 타고 3박4일의 본격적인 수학여행이 시작되었다.
千年古都 경주!
삼국을 통일을 이룩 하고도 왕건에게 모든 것을 내 주어야만 했던 비운의 帝國!
찬란한 불교문화를 일으킨 우리의 선조 땅, 慶州!
경주역에 도착했다.
驛舍건물이 한옥 기와지붕으로 되어있어 古風 스럽게 느껴졌다.
우리 일행은 역전 앞 , 우체국 옆에 위치한 삼선여관 이란 곳에 여장을 풀었다.
1일次 고적답사를 마치고 여관에 돌아와 저녁식사 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단, 외출은 통제하고 여관 안에서만 놀라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 이지만, 여관 주위에 遊廓이 위치해 있었다.(우체국 뒷골목)
班 별로 房 배정이 되었는데 우리방 에 부평 백마장에 사는 김 ** 君 이 있었다.
이 친구의 主導로 몇몇 악동들은 사복을 갈아입고(그 당시 사복이라야, 폴라 티셔츠, 골덴 합바지 정도
였고, 빡빡머리를 카바 하기위해 모자는 하나씩 썼다)
어떤놈은 새마을운동 모자 쓴 친구도 있었다. 월담을 하여 시내구경을 나왔다.
이리저리 한바탕 돌아다닌 후,
다시 여관 뒷담을 넘기위해 여관 뒷골목 으로 들어 가려니깐 살아있는 古蹟들이
마구 잡아 당긴다. 말로 만 듣던 "힛빠리 마찌" 의 밤에 피는 꽃 들 이었다.
우리는 어리둥절 하고 있는데, 우리의 호프 김 ** 君은 부평 백마장 기지촌 출신답게 능숙하게
夜花들과 딜 을 하고 있었다. 그날밤, 우리는 별천지 구경을 했다.
이튿날 아침, 2일次 고적답사를 하기 위해 여관앞 에 집합 하였는데 길 건너
약국 앞에서 어제의 용사들이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 마이신 3 일分 주세요"
또 어떤 놈은 유식한 척 하느라고 " 테트라 싸이클린 200mg짜리 주세요"
약국 주인이 한심한 표정으로 " 어느 학교 학생들이냐?" 묻는다.
어젯밤 새마을운동 모자를 쓰고 나갔던 친구 왈:
"인천 제물포 고등학교 입니다" 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얼마전 동기생 상가집 에서 백마장 출신 김 ** 君을 만났다.
친구들의 慶弔事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는 情있는 친구다.
수학여행 때 의 얘기를 하면서
" 너는 우리들 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아르켜 주었다"고 하니 술 한잔 사라고 한다.
잊지못할 쌍팔년도 히든 스토리다.
아무튼 경주와 통도사를 답사하고 학창시절의 마지막 수학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빛 바랜 사진첩 에서 경주 수학여행 때의 사진을 보면서 인고 동문회 각 단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 69 동지" 들의 건승과 발전을 기대 해 본다.
댓글목록 0
李聖鉉님의 댓글
선배님 글빨 오르셨네요. 작성시 "굴림"이란 단어 옆에 1pt 이렇게 되있는 부분우측 V를 눌러보시면 숫자가 나타나는데요.그 중에서 3pt정도로 선택하세요--글자크기입니다.물론 글 전부에 마우스 좌측을 누른채로 끌어서 파랗게 칠하시고요
이동열님의 댓글
69회의 추억,,,,,영어시험,독어시험,,얘기가 압권이데요^^ ㅋㅋㅋㅋ
이종인님의 댓글
어떻게 여관 이름도 기억하십니까
이동열님의 댓글
새마을 모자두 기억하시는데요,,몰,,ㅋㅋㅋㅋ
이동열님의 댓글
<EMBED
src=http://down.iloveschool.co.kr/file/20052/2005.06.04/seoul[1127].wma
width=300 height=45 type=audio/mpeg autostart="true" volume="0" loop="-1">
李桓成님의 댓글
형님덕분에 출판로드맵은 탄력받씀니다...인천 제물포 고등학교 입니다" 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창작이시죠?
최병수(69회)님의 댓글
허~ 허~ 그런 일이 있었군. 난 그냥 밥상을 엎어 버리고 쫄-쫄 굶은 기억만 있는 데, 그래서 고교 행정실에 근무할 때는 수학여행 갈 때 여관을 꼿감과 다투면서 경주시내에 있는 데서 불국사지구에 있는 데로 바꾸었습니다....ㅋㅋㅋ...섭아! 근데, 제이고가 아니고, 아이공고라고 안했던감??
李桓成(70회) 님의 댓글
아이공고라고 안했던감?? ===>인문님이 뭐라할텐데...//저는 李제 李리 꼴뜨李처럼 꼴李나 뜯으려합니다...
최병수(69회)님의 댓글
그 당시엔 운봉이 있었나요? 잘 모르겠고, 어쨌든 아이공고가 젤 쎄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지민구님의 댓글
이젠 의약분업으로 약국에서 약을 못 사게 되었네요..^^
신명철님의 댓글
저희도 그여관에서 잤어요..(중2때) 역앞 우체국옆 삼선여관... 뭐, 믿거나 말거나..ㅋㅋ
그때 씨레이션인가 그런것 무열왕릉 근처 노상에서 팔았어요. 양담배도 다섯가치나 들어있었구요.ㅋㅋ 그리고 박물관옆에 근화여고라고 있었구요.. 고2 경주 수학여행때.히히히..
신형섭님의 댓글
38년前 이야기라서 간혹 기억력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슴(동창諸位 의 양해를 바람)
큰 줄거리는 사실에 근거 하였슴(mian story is based on facts)
윤휘철님의 댓글
놀라운 기억력이야 형섭이. 우리방은 아침 밥상 뒤집어 엎고 모두 줄빠따.. 기억나네.
하루한번 출석도 좀 하시게.
이기호 67님의 댓글
신형섭 후배님! 반갑습니다. 영어 같은건 뭐 기본이고, 6개국어쯤엔 능통 하실것 같은 예감! 않그렇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