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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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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운악산 등반 날이 밝아왔다.
어릴 적 소풍가는 날처럼 들떠 잠이 일찍 깼다.
창밖을 내다보니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다.
비가 내린다는 기상대 예보에 전날 네이버로 가평
운악산날씨를 검색해보니 온도 19도에 오전에는 흐리고
비는 오후 6시부터 내린다고 하였으니 산행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몇 년 전 약국 앞 노점상이 파는 중국산 등산화가
겉보기에 괜찮아 샀다가 마니산 등반대회에
나갔다가 하행 시 발이 자꾸 아래로 쏠려
발가락이 아파 혼난 경험이 있기에 큰마음
먹고 엊그제 노스페이스 등산화도 한 켤레 샀다.
등산화 성능시험을 하고파 마음은 벌써 운악산에
가있다.
출발지인 학교 앞에는 정겨운 얼굴들이 이미 눈에 들어왔다.
도심을 벗어난 차는 시원한 맑은 공기 속으로 우리를 자꾸 뒤 밀었다.
차안에서는 벌써부터 구기자와 아침이슬이 뒤엉켜 술잔이
오고갔다.
상만 씨와 나는 등반 후에 술을 마시기로 굳게 도원결의를
하였건만 유 총무님의 집요한 공략에 밀려 이미 술은 나의
포도청을 넘어가고 있었다.
모텔이 예약되었다는 진한 농담에 홀려 그만 술잔을 받고 말았다.
등산화 끈을 조이니 나의 몸은 언제 무릎이 안 좋았냐는 듯이
탄력을 받아 날 자꾸 산 정상으로 이끌었다.
타는 것이라면 모두 자신이 있었지만 주간 산행에 별로 쉬지도
않고 오이하나 달랑 입에 물고 숙경 씨를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총알을 탄 사나이처럼 산을 오르니 아뿔싸 이 고문님을 버리고
운악산 정상에 등산화 발끝이 3위로 골인하고 말았다.
등반대회도 아닌데 이 고문님 뒤를 책임진다는 약속도 잊은 체
내가 보기에도 너무 빨리 올라와 버렸다.
드디어 나타나신 이 고문님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를 원망하심에
순간 죄송스러워 드실 것을 드리며 하산 시 뒤를 봐드린다 하니
하행은 나보다 더 잘 하신다고 하셨다.
해발 935미터의 운악산,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평의
아름다운 산을 음미하기도 전에 정상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려 주위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그래도 기암괴석 중 남근석에 매료된 여자회원들도 있다니 운악산은
여러모로 던져주는 메시지가 많은 산이었다.
등반대장을 맡아 노심초사 애쓰시던 이 부회장님이 문 총무와
상의 하더니 현등사 쪽으로 하산을 결정했다.
그런데 이것이 쿠테타가 되고 말았다.
등반대장의 입장에서 비는 제법내리고 가파른 하산 길은 더욱
위험하기에 중도에 포기한 대원들의 신변과 혹시 최선을 다해 오를
회원을 문 총무에게 맡기고 내려왔건만 윤 회장님이 중도포기를
마다한 채 최선을 다해 정상에 오르자 이미 회원들 대부분이 내려가
버렸으니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회장 유고를 대비한 부회장님과 총무 간의 무혈 쿠테타는
늦게 식당에 나타나신 윤 회장님의 일갈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우리 선두대열은 산에 성묘를 왔는지 중간 중간에 술상을 차렸고
하산 후반부부터 마셔 된 소주와 점심식사에 곁들인 소주와
구기자주는 입에 착착 달라붙으니 술은 나의 한계점을 넘나들고
있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강요된 술잔은 나 자신도 모르게 관광버스
춤의 세계로 내 몰았고 온몸에 열기가 후끈 달아올라 웃통을 벗어 제치니
누군가가 나의 젖꼭지를 비틀어
술김에도 아파서 혼났다.
범인은 여자회원 2명으로 압축되는데 성추행사건으로
입건되기 전에 자수하여 광명을 찾았으면 좋겠다.
정신 차려 허둥지둥 웃옷을 입으려니
뒤집어 입어 다시 벗어 제치고 나의 벗은 모습에 오늘 밤
잠을 제대로 못 이루겠노라는 여자회원도 생겨나니 나는
이번 가을 산행에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그 놈의 구기자주가 아침이슬과 만나 핵융합을 이루니
이제 망가진 이미지 회복에 상당히 시간이 걸릴것 같다.
그래도 비가 오는 중에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되니
감사하게 생각한다.
추억은 아름다운 산행이 되리라.
댓글목록 0
이환성(70회)님의 댓글
도봉산宅에 쏠려..처음간곳이..운악산/남근...나에겐 추악한산행였네...10만원짜리 빅토리눅스칼을 천원짜리중국칼과 바꾼곳...
이동열님의 댓글
광란의 산행이었구먼유,,ㅋㅋ
최송배님의 댓글
운악산 근처의 포도가 맛있다면서요?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산행이 아니라 술행이었구먼..ㅋㅋ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술행이었구먼===>酒行 술을 못마시는 입장에서 볼 때 산에 가 음주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일부는 과음도 마다 하지 않는다 건강 증진 및 기분 전환이 목적인데...
석광익(76회)님의 댓글
솔직히 말해라. 성추행 당하고 싶어서 웃통 벗어 제친 거지? 그거 성추행 유도 행각으로
입건 될수도 있으니 네가 먼저 자수해야 할것같다. ㅎㅎㅎㅎㅎㅎ
윤용혁님의 댓글
광익아 잘 지내고 있었구나.
성추행 유도행각이라는 캐나다법을 적용하면 안돼. 친구야. ㅎㅎㅎ
그 사건이 알려져 요즘 집사람에게 밥 얻어 먹기 힘들다. 술김의 객기파장이
만만치 않구나.
사실 운전과 등반시 금주원칙은 내 철칙이었으나 이게 그리 쉽지않더군.
등반후 식당에서 구기자주와 소주가 문제였어.안녕.
윤휘철님의 댓글
용혁시인님 오프라인에서는 통 볼 수 없네 유명인사라서 그런가요?
윤용혁님의 댓글
윤선배님 다음 번에 꼭 뵙도록 할께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휘철선배님이 절 잊지않고 계시니 이몸은 송구하고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연개소문역 넘 멋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윤휘철님의 댓글
연개소문역이야 명철아우님이 캐스팅해 준 덕분이고, 다음 오프라인때는 등단 축하주 한잔 합시다 시인 아우님.
윤용혁님의 댓글
넵 선배님. 선배님이 콜하면 만사 제치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