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막상 그 날이 오면
작성자 : 인일14.박찬정
작성일 : 2006.10.24 21:22
조회수 : 1,369
본문
재작년에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제사가 돌아온다.
병환들어 1년여 누워 계시며 사그라질대로 사그라져 이젠 내일 밤에 돌아가신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닐 즈음 남편과 나는 약속을 했다.
젊은 시절 40여년을 사신 부산에서 낙향하여 태을 묻은 고향에 돌아와 사시다 외롭지 않게
편히 돌아 가시는 거니까 한국에 있는 우리 친구나 知人들에겐 연락하지 않기로.
'나중에 친구들이 알면 의리 없고 우정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까?'
' 괜찮아. 장례 다 치른 후에 여차 여차해서 연락할 겨를도 없이 무사히 마치고 간다고
전화하면 되는거야. 바쁜 사람들 이 먼 곳까지 오라는 것도 무리고, 갚을 기약 없는 신세를 지는 것도
마음의 빚인데다 서로 난처하고 폐가 될 일은 삼가하는 것도 우정이고 의리인거야.
원래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 터를 떠나 산 지 십년.
더구나 일본이란 가깝고도 면 나라에서 살다 보니 남편이나 나나 정 어쩔 도리없는 일 아니면
' 아는 사이' 란 이유로 부탁하고, 신세지고, 사정하는 일은 안하기 주의다.
일년을 편찮으시던 아버님이 마침 내가 일주일 예정으로 한국에 가 있는 중에 돌아가셨다.
마치 나를 마지막 보고 가시려고 안간 힘을 쓰고 실낱같은 목숨을 놓지 않고 계셨던 것 처럼.
그때 남편은 , 큰 지진이 나서 공항, 신칸센, 고속도로가 모두 끊겨 고립무원이 된 니카타 옆 토야마 출장지에서
만추의 저녁 무렵 부친의 부음을 듣게 되었다.
출장 간 일을 서둘러 마무리 해 놓고 끊기지 않은 나가노 (長野) 쪽 어두운 국도를 돌아 돌아 달려
집에 와서는 내가 한국가면서 '그동안 혹시' 일 지 몰라서 준비해 놓고 간 검은 양복을 입고
부산행 비행기에 오른다고 했다.
날이 밝자 검은 리본을 매단 화환이 줄줄이 진열되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찾아 봐도 이 喪家의 차남인 남편을
연고로 한 화환은 하나도 없었다. 알리지 않기로 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한 사람이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사십년 인맥을 맺었건만
어쩌면 이리도 적막하게 인연의 고리가 똑 끊어져 버렸을까 하는 형용키 어려운 쓸쓸한 마음이 들고,
남편이 와서 화환의 행렬를 보면 지금 나와 같은 마음이 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미치자, 약속을 어기고
망설이고 망설이던 전화를 서울에 했다. 남편의 막역한 친구에게.
그이와 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무척 망설이다 전화한다고, 그이는 아직 오지 못하고 있는데
조그만 화환 하나 보내 주면 내 고적한 마음에 위로가 될 것 같다고. 정말로 작은 화환 하나면 된다고.
전화 통화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커다란 화환이 오고, 그날 저녁 늦게 그이의 친구들이 동부인하여 먼 길을 달려왔다.
장례를 마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걸은 전화에 들려온 얘기로는
먼 곳에서 온 손님을 위하여 우리가 마련해 놓은 호텔에서 편히 쉬고 발인식 끝낸 후 서울로 오는 길엔
통영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어시장에 들려 집에 있는 가족을 위해 회를 사서 얼음 채워 싣고,
지천으로 파는 단감을 서너자루 씩 사서 싣고, 청명한 가을 단풍구경하며 돌아 오는 길이 얼마나 좋은 가을 여행길
이었는지 돌아 가신 분께 감사했다고.
두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알린 것이 잘한건지 잘못한건진 모른다.
언제일 지 몰라도 이제 한 분 남은 시어머니의 임종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오면
남편과 나는 또 그런 약속을 할테지만
막상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병환들어 1년여 누워 계시며 사그라질대로 사그라져 이젠 내일 밤에 돌아가신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닐 즈음 남편과 나는 약속을 했다.
젊은 시절 40여년을 사신 부산에서 낙향하여 태을 묻은 고향에 돌아와 사시다 외롭지 않게
편히 돌아 가시는 거니까 한국에 있는 우리 친구나 知人들에겐 연락하지 않기로.
'나중에 친구들이 알면 의리 없고 우정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까?'
' 괜찮아. 장례 다 치른 후에 여차 여차해서 연락할 겨를도 없이 무사히 마치고 간다고
전화하면 되는거야. 바쁜 사람들 이 먼 곳까지 오라는 것도 무리고, 갚을 기약 없는 신세를 지는 것도
마음의 빚인데다 서로 난처하고 폐가 될 일은 삼가하는 것도 우정이고 의리인거야.
원래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 터를 떠나 산 지 십년.
더구나 일본이란 가깝고도 면 나라에서 살다 보니 남편이나 나나 정 어쩔 도리없는 일 아니면
' 아는 사이' 란 이유로 부탁하고, 신세지고, 사정하는 일은 안하기 주의다.
일년을 편찮으시던 아버님이 마침 내가 일주일 예정으로 한국에 가 있는 중에 돌아가셨다.
마치 나를 마지막 보고 가시려고 안간 힘을 쓰고 실낱같은 목숨을 놓지 않고 계셨던 것 처럼.
그때 남편은 , 큰 지진이 나서 공항, 신칸센, 고속도로가 모두 끊겨 고립무원이 된 니카타 옆 토야마 출장지에서
만추의 저녁 무렵 부친의 부음을 듣게 되었다.
출장 간 일을 서둘러 마무리 해 놓고 끊기지 않은 나가노 (長野) 쪽 어두운 국도를 돌아 돌아 달려
집에 와서는 내가 한국가면서 '그동안 혹시' 일 지 몰라서 준비해 놓고 간 검은 양복을 입고
부산행 비행기에 오른다고 했다.
날이 밝자 검은 리본을 매단 화환이 줄줄이 진열되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찾아 봐도 이 喪家의 차남인 남편을
연고로 한 화환은 하나도 없었다. 알리지 않기로 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한 사람이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사십년 인맥을 맺었건만
어쩌면 이리도 적막하게 인연의 고리가 똑 끊어져 버렸을까 하는 형용키 어려운 쓸쓸한 마음이 들고,
남편이 와서 화환의 행렬를 보면 지금 나와 같은 마음이 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미치자, 약속을 어기고
망설이고 망설이던 전화를 서울에 했다. 남편의 막역한 친구에게.
그이와 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무척 망설이다 전화한다고, 그이는 아직 오지 못하고 있는데
조그만 화환 하나 보내 주면 내 고적한 마음에 위로가 될 것 같다고. 정말로 작은 화환 하나면 된다고.
전화 통화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커다란 화환이 오고, 그날 저녁 늦게 그이의 친구들이 동부인하여 먼 길을 달려왔다.
장례를 마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걸은 전화에 들려온 얘기로는
먼 곳에서 온 손님을 위하여 우리가 마련해 놓은 호텔에서 편히 쉬고 발인식 끝낸 후 서울로 오는 길엔
통영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어시장에 들려 집에 있는 가족을 위해 회를 사서 얼음 채워 싣고,
지천으로 파는 단감을 서너자루 씩 사서 싣고, 청명한 가을 단풍구경하며 돌아 오는 길이 얼마나 좋은 가을 여행길
이었는지 돌아 가신 분께 감사했다고.
두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알린 것이 잘한건지 잘못한건진 모른다.
언제일 지 몰라도 이제 한 분 남은 시어머니의 임종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오면
남편과 나는 또 그런 약속을 할테지만
막상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댓글목록 0
이성현70님의 댓글
귀한원고 감사합니다. 잊지말고 싣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동열님의 댓글
그런거죠,,,다.
李聖鉉님의 댓글
이 글은 우정의 원고에 응모한 글로서 이번 4집에 누락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주세요.
이환성(70회)님의 댓글
A time for us...고등때 본영화 로미오와 쥬리엣 주제가...그날이 오면...생각납니다
李聖鉉님의 댓글
인일14회에 이 원고가 있습니다.인고에 대한 멘트도 있으니 답례멘트 부탁합니다.inil.or.kr --->기수별--->14회
윤휘철님의 댓글
박찬정님 반갑습니다. 그날이 오면 또 연락하십시오. 정말 친구란 연락하지 않으면 섭섭하답니다.
윤용혁님의 댓글
박찬정님 반갑습니다. 애사의 심적 고충을 진솔하게 전해 주시는군요.
옛말에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준다는 말이 있듯이 부음을 알리지
않으면 집안의 연을 끊는다고 경사는 몰라도 애사는 알리는 것이
지당 한줄 압니다. 좋은 원고 감사해요.
윤인문(74회)님의 댓글
우리 집사람도 인일 14회 인데요...반갑습니다.
인일11.안광희님의 댓글
저희 후배 찬정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알찬 내용으로 책이 묶어져 많은 사람들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인일12김연옥님의 댓글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이네요.인일여고 화이팅!!!!아자아자.인일,인고커플 화이팅!!!광희 언니도 오셨네요. 자주 오세요. 우리 옆지기가 잘 해줄꺼예요.---식사등 etc.
인일14박찬정님의 댓글
옴마야! 기절해서 나동그라질 뻔 했어요. 실은 제가 글을 드리고 나서 인고홈페이지엘 처음으로 들어와봤거든요. 제 예상과는 달리 외부인이 아무도 없어서 아차!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이 쪽 팔리는 노릇을 우야믄 좋을까요?
부끄러운 글이나마 인고의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댓글도 주셔서 감사합니다.
李聖鉉님의 댓글
모쪼록 3분 인일님들 자주오세요. 자유게시판에도 그림작품이건 글이건 자유롭게 올려주시고 기회에 홈피를 통한 兩校의 우애가 돈독해지기를 바랍니다. 금 번 나오는 작품집에는 제고관리자,동산관리자 등의 글도 싣을 예정으로 그 배포도 인일,제고,동산에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인일11.안광희님의 댓글
책으로 엮어진다니 조금 후회스럽네요.심사숙고해서 잘 쓸껄.하기사 신경을 더 쓴다고 해도 더 나아질 솜씨가 아니니 안타깝네요.찬정아,나동그라져도 일본에서는 나동그라지지 말고 한국에 와 선배들 앞에서 나동그라지거라. 모두들 기꺼이 안아 일으켜 줄테니....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인일 홈피에서 박찬정님의 글에 답글을 올린 후 이번이 두번째 그래서 인지 마음이 편하네요 80년초 부터 오사까에서 5년 거주해 친근감으로 첫번째 답글 올리는 계기가 되었죠 지금은 미국 거주로 해외 거주 찬정님 마음을 좀 헤아릴 수 있죠 세분 인일 문필가 가족님들 환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