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주일학교
본문
주일학교
어릴 적 내가 살던 고향집 바로 옆에 할아버지가
영국선교사와 같이 세우신 성당이 있었다.
종탑에 달려있는 작은 종에서 울리는 청아한 종소리는
산골짝 마을을 깨우고 어린 나를 주일학교로 인도하는
사랑의 종소리였다.
그러나 때론 그 종소리는 슬픔을 알리는 종소리로
들릴 때가 있었으니 아랫마을 작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주 느리게 그리고 천천히 할머니의 나이대로 울려와
잠깨 누워 그 숫자를 세고는 작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았다.
성당에 다니시던 동네 어른들의 부음소식을 그와 같이 알렸다.
당시에 산골마을에는 초가집 처마 밑에 나무 땔감을 많이
싸 놓아 아궁이의 불씨가 바람에 날려 불이 많이 났다.
그럴 때면 종탑의 종도 불이 날 정도로 빠르고 강하게 타종되어
긴급을 알리면 아버지 ,어머니, 동네 분들은 물통 들고 부리나케
화재현장으로 달려가셨다.
이때는 동네 경보장치로 이용되고 있었다.
주일이면 그 종소리 은은히 울려 퍼져 저 멀리 존강 부락에도 들리니
한 어여쁜 소녀 언니랑 손잡고 산길 돌아 개울건너
산문리 성당을 찾았다.
아주 예쁜 소녀 매주 주일학교를 찾건만 길모퉁이 집
대문자락에 크게 써진 개 조심 글귀보고 놀라고 조금 뒤
으르렁거리는 변견의 돌진에 너무 마음상해 주일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어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주일학교에 나타나지 않는
그 소녀를 기다리며 뒷자리만 돌아보는 무심한 소년이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성당청년들은 뒷산에 올라 청솔가지를 꺾어
성당입구를 장식하고 작은 소나무 두 그루를 베어 크리스마스트리를 하였다.
색종이도 오리고 별도 붙이고 하얀 이불솜도 올려 멋지게 장식하였다.
우리들은 성탄 극 연습도하고 신나는 케롤송도 배웠다.
성탄 전날은 성당에 모여 그동안 연습한 노래와 춤도 추고
성탄 연극도 하였는데 나는 잘난 척 하다 대사를 잊어 끙끙대니
성당어른들 배를 잡고 한바탕 웃음바다에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성당에서 밤을 세고 새벽에 나서 새벽 송을 돌때 창호지로 붙여 만든
등을 들고 제일먼저 우리 집 앞에서 “고요한밤 거룩한 밤” 노래를
부르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미리 준비한 양초와 과자봉지를 건네 주셨다.
눈이 많이 내려 무릎까지 빠져가며 성당에 나오지 못한 소녀의 집 앞에
서 “노엘”이라는 성가 곡을 부를 때, 그 소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으나
곤히 잠이 들었는지 보이지 않고 그녀의 큰어머니만 반가이 우리 일행을
맞으며 헌금봉투와 푸짐한 과자봉지를 건네 주셨다.
성탄 날 주일학교에는 평소에 보이지도 않던 많은 동네 아이들이
모여 들었는데 그 이유는 과자를 나누어 주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짓궂은 동생의 횡포였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성당을 우리처럼 잘 다닌 애들이나 평소에
성당근처를 얼씬도 하지 않던 애나 과자 봉지를 똑같이 나눠 주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동생이 모처럼 주일학교에 나와 과자봉지를 받은 애를
때려 울렸다.
과자를 먹던 그 아이는 과자에 코와 눈물이 범벅되어 즐거워야
할 성탄이 악몽의 성탄이 되고 말았다.
나는 동생에게 하느님께 벌 받는다고 일러도 씩씩거리며 아주 심술
꾸러기 표정으로 그 애를 째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주일학교를 파하는 노래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주일학교는
천주께서 은혜로이 세워 주셨네.
따듯하고 즐거우며 애정에 넘쳐
일 년 중에 쉰 두 번 여기 모이네.
나의 가슴에 아롱 새겨진 이 노래는 종소리와 함께 들려 대학시절
내내 인천 자유공원 아래 내동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어린이들과
늘 같이하는 계기가 되었고 어린 시절 정서가 자라서도 크게
자리매김함을 익히 알게 되었다.
주일학교는 내 마음에 아름다운 고향이다.
댓글목록 0
윤용혁님의 댓글
동열형 아름다운 기타선율의 아람브라궁전의 추억을 올려 올려주시니
옛 생각에 잠겨봅니다.
가을을 타고 흐르는 추억은 기타와 함께 그렇게 깊어 갑니다.
형님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잠깨 누워 그 숫자를 세고는 작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았다==>4집에 올려두 되나요 용혁님..만사제끼고 인사동모임 목21일 8시와서 알려주게나..꼴로 멘트말고..
장재학90님의 댓글
아고 얼릉 내일 알바 끝내고 신변방 복귀 해야지...ㅋ 윤용혁 선배님 홧팅~~!
이기호 67님의 댓글
주일학교 교사! 너무 뿌듯하죠. Jimmy Carter 대통령, Wanamaker 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던 직분!. 윤용혁 후배님! 잘 읽었음니다. 감사합니다.
이동열님의 댓글
<EMBED s src=http://jnjmuse.cnei.or.kr/musicbox_3/alhambra_guitar_segovia.mp3 width=170 height=26 type=download/only loop="-1" autostart="1">
劉載峻 67回님의 댓글
참으로 정겨운 주일학교를 어찌 이리도 잘 묘사 하나, 강화 성공회 성당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다 학창 시절을 보낸 내동 3번지 성당에서 내려다 본 인천 시내 전경, 자유 공원 길 선하다 용혁 아우 고맙다 이동열 음악 감독의 선곡이 한층 옛 날을 회상 케 한다
허광회님의 댓글
좋은 추억담과 음악 감사드립니다.꾸벅.
윤용혁님의 댓글
환성형님 그리하여 주시면 저로서는 더욱 영광입니다. 업무가 안 끝나 장담을 못하겠어요.
마음은 늘 정모에 가 있답니다.
재학후배님 얼른 신변방 복귀를 기원하며 좋은 글 부탁해요.
이기호선배님 말씀대로 소중한 직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시간이 허락한다면
참여하고픈 생각이랍니다.
재준형님 제가 형님
윤용혁님의 댓글
뒤를 이어 따라갔던것 같습니다. 앞서가신 형님의 발자취가 자유공원길 내동성당에
숨결로 남아있는 듯 합니다.
광회후배님 반갑고 추억을 공유하니 고맙네요.
윤인문님의 댓글
지금 내귓가에 그 아름다운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용혁후배는 글로써 가끔 내맘속에 그려오던 추억들을 회상케하네요..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