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자유공원 락(樂)
본문
자유공원~~ 바라보며~~흐뭇한~~마음♬♩♪
온세계와~~손-잡는~~자유의~~손길 ♬♩♪
부지런히~~배우고~~힘차게~~일해서 ♬♩♪
빛내자~우리 학교~~송월 ♬♩♪
이 노래는 내가 졸업한 송월초등학교 교가이다. 인천의 교가들 대부분이 지명 문학산이
나오는 것에 반하여 자유공원이 나오는 것이 생소로울 것이다.
나는 5살부터 대학 3학년초까지 자유공원 밑 송월동에서 자랐다.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자유공원을 무대로 생활하였다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항상 아침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내방 창문으로 제일먼저 작약도를 바라보았고, 그리고 자유공원 기상대 서쪽 바다방면에 자리잡았던
송월초등학교 재학 6년동안 교실 복도를 거닐때 항상 작약도를 바라보며 자랐다. 지금도 나는 어렸을때의
추억을 회상코자하면 작약도가 바라보이는 월미도의 횟집이나 자유공원쪽 찻집이나 카페를 찾곤한다.
나는 76회 윤용혁후배처럼 강화에서의 아름다운 시골 초등학교 학창시절의 추억은 없지만잠자리채들고
잠자리..메뚜기,풍뎅이 등을 잡는다고 자유공원 기상대 주변 언덕을 친구들과 뛰어다닌 적은 있었다.
어렸을적 송월동에서의 추억중 제일로 꼽는다면 겨울의 자유공원이었다. 초등학교 때 나와 우리
친구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겨울...그것은 바로 눈올때 스키와 썰매를 타던 기억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눈이 많이 왔었는지...무릎이상 푹푹 빠질 정도로 내렸었다.
눈만 오면 자유공원은 차가 오르내리질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공원은 우리의 즐거운 놀이터로 변한다.
눈이 오면 저마다 들고 나오는 것이 스키와 썰매이다. 스키하면 지금은 비싼 스포츠로
알고 있지만 그당시 우리들이 타는 스키는 다름아닌 대나무스키..발폭만한 통대나무를 반쪽 자른 후
뻘겋게 달아오른 연탄집게로 대나무를 앞쪽에 슬쩍대 구부린다.
그러면 이것이 스키가 되었고 썰매도 밑에 대나무를 대어 타곤했다. 주요 코스는 송월초등학교
정문입구부터 송월시장앞까지 500미터의 언덕..겨울방학때는 아침먹고 나와 저녁까지 하루종일 신나게 타고
내려와 리프트없이 정문앞까지 걸어올라가 다시 내려오고
오르락 내리락을 수십번..이것이 우리들의 겨울놀이로서의 유일한 樂이었다.
나는 배다리 인고시절 같은 교정의 상인천중을 다녔다. 학교 등하교는 항상 자유공원을 넘어 지금
성공회 사이골목을 거쳐 경동사거리 그리고 싸리재로의 길로 다녔다.
나와 우리 친구들은 중학교때 여자에 대한 무척 호기심을 가지며 사춘기를 넘겼다.
지금의 학생들은 초등학교때부터 올바른 성교육으로 건전한 성가치관을 가졌지만 그 당시 우리는 성에
대하여 누군가 가르쳐준 적도 없었고 무지한 상황에서 사춘기를 보내다보니 길거리 리어카에서 팔았던
금지도서 X단지, X굴초 등이 같은 반 전체를 돌며 유일한 성지침서가 되었다. 중3까지 나와 같이 항상 등하교를
같이하던 윗집 살던 중.고등학교 동창 장모라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 중학교때는 윤복희가 국내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들어와 한창 여자들에게 유행시킨바 있었다. 그때 그 친구와 나는 여자 속내의 색깔
알아맞히기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 게임장소로 적당했던 곳이 자유공원 팔각정 石汀樓였던 것이다.
자유공원 석정루 올라가던 계단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짐작했을 일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춘기를 넘기는
유일한 樂이었다.
그 친구와 하교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전에 환성선배님의 글에 수록됐던 물방개 사건이다. 낮에 자유공원
길가 주변에는 많은 좌판이 있었다. 사주팔자 보는이..야바위꾼..깡통세워져 있는 곳에 고리를 던져 걸리면
경품타는 게임..돈을 걸고 긴 나침반 돌려 서는 곳 경품따먹기, 돌아가는 회전판에 다트 던져 경품따먹기
등이 있었다. 그중에 함석다라에 물방개를 띄워놓고 물방개가 가는 곳에 카라멜, 박카스 등의 경품을 따먹는
게임이 있었다. 어느날 그 친구가 돈을 내고 게임을 했는데 박카스가 당첨되었다.
그 친구는 좋아라하며 박카스를 친구 한모금도 안주고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런데 그날 저녁 그 친구는 토사광란에 시달리기 시작하여 4일간 학교를 결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박카스가 가짜였던 것이다. 그 친구와 나는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며 웃음을 자아내곤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우리는 저녁에 자유공원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여친과 돈안드는
유일한 테이트 장소가 자유공원이었기 때문이다. 인적이 드문 곳...여친을 조용히 껴안을 수 있던 곳...
특히 성공회 뒷골목은 기가 막힌 장소였던 것 같았다. 용동이나 신포동에서 술한잔하고 가볍게 올라가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야경에 취할 수 있는 장소였던 것이다. 지금은 옛날과 같이 사람들이 북적대고
영화를 누렸던 자유공원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사람들이 한적한 하나의 공원으로 남아있을 뿐이어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지금도 그전에 "피아노" 라는 드라마의 한 장소로도 방영되었던 낙엽이 수북히
싾인 오솔길과 그 벤치가 그리워진다.
댓글목록 0
이성현님의 댓글
우측 줄 마추기는 나중 업자가 할 거예요. ---여기까지가 내 한계
이성현님의 댓글
여름에 가면 으슥한 곳에서 껴안고 있는 사람들 많이 있던데......
이종인님의 댓글
새벽에 청소하면 사루마다가 한 니야까,,,
윤인문님의 댓글
성현선배님! 이글은 아래아한글에서 작성 편집기에 복사했는데 편집기상에는 이상없이 안짤리는데 작성완료하여 올리면 우측 마진이 안맞아 짤립니다. 이 편집기와 아래아 한글과는 잘 호환이 안되는가 싶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안그러는데 여기 편집기가 문제가 있습니다. 빨리 손보아 할 듯 싶네요..
윤인문님의 댓글
종인선배님!! 사루마다가 뭐예요?
이환성(70회)님의 댓글
금지도서 X단지, X굴초 <===밤에피는꽃(베스트셀러) ===>투비컨티『누두』(누락)
윤인문님의 댓글
동열이형! 락앤롤로 음악 깔아봐용~~~~그리구 작품용 사진 포토앨범에 올렸습니다.ㅎㅎ
이상동님의 댓글
드뎌 올리셨군요... 아련하게 자유공원 롤러 스케이트장이 생각나는군요...야경이나 보러 함가야겠습니다...
윤인문님의 댓글
상동후배!!자유공원 롤러 스케이트장 생기기전엔 거지동굴이 있었음..그 장소는 우리가 고등학교때 일요일 아침 야구하던 곳임.
이기석님의 댓글
고교시절 교련복입구 데이트하던 기억이,,,,,,,진짜루
안남헌(82회)님의 댓글
80년초에는 동인천심야다방에서 비됴보며 옆에서 졸고있는 여자들 보는것도 한재미였는데..ㅎㅎㅎ
이동열님의 댓글
<EMBED style="FILTER: alpha(opacity=100 Style=3 FinishOpacity=20) gray progid:DXImageTransform.Microsoft.Blur(PixelRadius=0 MakeShadow=false); BORDER-LEFT: #cccccc 0px solid; WIDTH: 339px; BORDER-BOTTOM: #cccccc 0px solid; HEIGHT: 24px" src=http://charge-music-asx.musiccity.co.kr/playProcess.html?site_code=empas&type=http&str=143285. width=300 height=50 hidden=true type=video/x-ms-asf loo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