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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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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할머니
내가 이 땅에 태어나던 날 나의 친 할머니는 “달았다. 달았다.
고추 달았다!” 그렇게 기뻐하시다 그해 가을 돌아가셨다 한다.
나의 기억 속에는 둘째할머니와 막내할머니 기억뿐이 없다.
막내 할머니는 인정은 많으셨으나 뽕나무 오디 외에 놀러 가면
별로 먹을 것이 없었고 그래도 둘째 할머니 댁에는 팝배나무와
앵두나무가 있어 따 먹는 재미로 자주 놀러갔다.
그러나 둘째할머니는 호랑이 할머니라는 별명에 걸맞게 무섭고
사나우셨다.
빨갛게 잘 익은 앵두를 돌담 너머로 따 먹으면 어느새 아셨는지
들창문을 버럭 열어 제치며 “이놈들!”하고 불호령을 내리셨다.
어느 날은 너무 놀라 그만 돌담을 헐어 트리고 도망을 친 적도
있었다.
할머니가 아이들을 쫒아 올 수 없을 때 잘 사용하시는 언더스로우의
돌팔매질은 정말 정확하여 공포의 대상이었다.
가을이 되어 팝배가 익어갈 쯤 나를 비롯한 동네아이들은 아람 들이
팝배나무에 기어올랐다.
그 신맛의 팝배가 뭐 그리 좋았는지 아이들로 팝배나무는 시련을
겪고 있었다.
둘째 할머니는 그것이 싫으셨는지 글쎄 어느 날은 가시나무로
중무장을 해 놓거나 아니면 나무기둥에 애들 몰래 인분을 칠해 놓아
그 날 나무에 오르던 나는 기절초풍 할 뻔하였다.
미끈하며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찌었다.
상상초차 싫었다.
놀부마누라가 따로 없었다.
다시는 둘째할머니네 안 놀라 간다고 다짐하였건만 이것도 구정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무너졌다.
둘째할머니 댁에는 제사를 지내시기 때문에 제사상에 차렸던 형형색색의
오강사탕, 새파란 얼음사탕, 다식, 생율등을 세배를 가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생과 사촌동생 그리고 나는 지난 가을날의 뼈아픈 기억을 잊은 채 세배를
갔다.
아주 얌전한 채 둘째 할머니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드리면
다 아시면서도 “이애는 뉘 집 아들이야?”하시며 시치미를 떼셨다.
잠시 후 벽장에서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제사음식을 쟁반에 내오셨다.
그러면 우리는 점잖을 떨었고 먹지를 않고 기다렸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식혜를 가져오신다며 슬며시 자리를 피해주셨다.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달려들어 쟁반이 뒤집어 지고 오강사탕이
튀고 난리가 났다. 서로 먼저 가지려고 난리를 폈던 것이다.
그 끈끈한 사탕을 먼지 속 호주머니에 집어넣으면 할머니께서 “애들이
왜 난리야“ 하시며 식혜를 들고 방으로 들어오셨다.
먹을 것이 별로 없던 그 시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으로 둘째할머니와의 갈등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새해는 밝았다.
댓글목록 0
김우성님의 댓글
용혁 아우님의 창작욕이 부럽군. 그 놀라운 기억, 감수성 ,아직도 남아 있는 동심----.잘만 다듬으신다면----.
이동열님의 댓글
그런 할머니들이 우리가 이만큼살수있는 끼를 전해 주셧던건 아닐까요?
석광익님의 댓글
용혁이 소프트볼 피칭실력을 둘째 할머니께 물려 받았구만.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유도선생 야마모도님은 학생들 화장실서 피다 꼬부쳐논 담배(휠터)에 인분을 발라노셨다던데...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