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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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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평해황씨 집안에 삼남 일녀 중 막내로 강화군 하점면
이강리에서 태어 나셨다.
늦둥이로 태어났기에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셨다.
일제 강점 말 개성을 주 무대로 포목장사를 하시는 외할머니는
늘 어머니를 당신의 셋째아들 지게에 태워 데리고 다닐 정도로 무척
귀여워하셨다.
억척스럽고 장사 수완이 좋으셨던 외할머니가 이질이라는
전염병에 걸리셔 그만 어머니 나이 12살 때 돌아가셔서 조실부모
하였다.
일본순사들이 외할머니 시신을 불태우기 위해 내 놓으라고 난리칠 때
기지를 발휘한 외삼촌들에 의해 비오는 날 몰래 산 깊은 곳에 겨우
안장할 수 있었다.
큰 오빠네 집에 맡겨진 어머니의 운명은 그때부터 고난의 시작이었다.
또래 조카들의 질투와 그렇게 가고 싶어 하시던 인천의 육상학교로의
진학도 당시의 편견과 오해로 좌절 되셨다.
설화의 콩쥐처럼 논농사 밭농사, 어린 손으로 끌려 다니다 열아홉 살에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던 아버지를 중매로 만나 양도면으로 시집을 오셨다.
달랑 장롱 하나 들고 시집온 어머니, 수 만평의 중농의 집으로 시집
오셨으니 고생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당시 여인들이 대부분 그러하였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아들에게
시집온 어머니는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셨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일이 쌀과 보리방아를 찧어 그 많은 일꾼들의 밥을
짓느라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아픈 고된 나날이었다.
그러던 중 육 이오 사변이 터지며 초등학교 교사로 계시던 아버지가
구 일오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패퇴 시 학교에 걸려있는 인공기를
제거하고 학교에 태극기를 올리시다 쫓겨 숨어 지내시다가
바닥빨갱이들에게 납치되어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를
기지를 발휘해 열흘 만에 구해 내셨다.
아버지가 놈들에게 붙들려 있는 동안 눈물로 하느님께 기도 하셨다.
“제발 아무 죄 없는 저이를 구해주소서” 라고 기도하시면서 아버지
밥 굶기지 않도록 주먹밥을 해가지고 그 먼 깜깜한 산길 불우리
고개를 울면서 넘으셨다. 그 당시는 두려움도 없었다.
정말 천우신조로 강화경찰서 무도장에 갇혀 인민군들에 끌려 나가던
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놈들이 우왕좌왕하는 틈을 노려 구석진 곳에
넋이 나가있는 아버지를 놈들의 총부리 위협을 무릅쓰고 끌어 내셨다.
그 후로부터 시작된 어머니의 새벽기도는 고삼시절 내가 인천 석남동
개 건너 살 때 대학입시를 얼마 안 남기고 형과 내가 한방에서 자다
연탄가스 중독이 되어 있을 때 어머니가 꿈속에서 나타나 나의 어깨를
후려치시며 얼른 일어나라 소리치시기에 벌떡 일어나다 “가스”라는
외마디를 하고 정신을 잃으니 그래도 체력이 남은 형이 나를 방에서
끌어내 땅바닥에 눕혀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말 어머니는 생떼 같은 두 아들을 잃을 뻔 했다.
어머니의 한결같은 자식위한 새벽기도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월급쟁이 갈급 쟁이라는 선생의 아내로 세 아들의 대학까지의
뒷바라지는 정말 눈물 겨우셨다.
박봉을 다 털어도 모자라는 등록금을 준비하시느라 마음고생,
이만 저만이 아니셨다.
수천 평 논농사 그리고 밭농사, 돈 아끼시느라 우리는 물론 아버지
머리도 손수 깎으셨고 그 더운 여름날 농약 분무기를 어깨에 메고
혼자 다 뿌리셨고 무지의 소치로 분말 농약가루를 마스크 없이
치시다 쓰러지셨다.
그 일로 기관지를 다 버려 해소 천식의 만성기관지염을 아시니
대화도중 기침으로 얼굴이 시뻘개 지시며 호흡 곤란을 일으키실
때는 숨이 곧 넘어갈 것 같았다.
아들이 약사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를 낳으시고 얼마 안 있어 수술로 세브란스 병원 입원하셨을 때
내가 죽으면 저 어린 것 어쩌나 하시며 밤새 우셨다는 말씀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당신이 아픈 관계로 젖을 잘 못 먹여 키운 것과 농사일로
너무 바빠 나의 초등학교 봄 소풍 시 도시락에 망둥이 두
마리밖에 못 싸 주신 것을 늘 가슴 아파 하시던 어머니,
오늘 성가병원에서 신경성 치매라는 최종 진단을 받으셨다는
누님의 연락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어머니!
그래서 지난 부활절 날 성당에서 만났을 때 유난히 야위시고
손을 많이 떠셨군요.
어머니! 저를 대문에서 배웅할 때 어머니 힘없이 손 흔드시는
모습에 차를 돌리다 집사람 몰래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 답니다.
논밭으로 다니셔서 시커멓게 그을린 어머니의 모습을 어린마음에
한 때 창피하게 생각 하였던 점 용서하세요.
이제와 살만하시니 청천벽력 신경변성 치매라니요.
어머니 품위를 지키시며 저희들과 오래 오래 사실 수는 없나요?
나 지금 약국식구들 몰래 조제실에서 울고 있어요.
가여운 어머니!
설마 했는데 안타까움 금할 길 없습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나 지금부터 어머니 더욱 사랑 할래요.
가슴으로 어머니를 사랑해요.
댓글목록 0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어머니의 한결같은 자식위한 새벽기도 ===> 엄니를 위해 이젠 자식이 기도드립니다...
劉載峻(67回)님의 댓글
모친 사랑이 참 깊습니다 2번 읽어도 동감 입니다 글 감사 합니다
지민구님의 댓글
우린 5월 8일만 기억하지만 부모님들은 항상 우리를 챙겨주십니다...
최병수님의 댓글
어머님의 사랑은 내가 죽어서도 못 갚을 끝 없고 깊은 사랑입니다. 강화에 울 처갓집의 친가[하일리]+ 외가[선행리]가 있답니다.
이동열님의 댓글
<EMBED style src=http://pullip.ktdom.com/music203/257.asf volume="0"hidden="true" loop="-1">어머님은혜 배경음악깔았다오,,,용혁님
이동열님의 댓글
눈물이 괜시리 흐르는 비나리는 월요일의 이동열입니다.
이순근님의 댓글
사랑을 드릴수 있는 어머님이 계신것 만으로도 큰 행복입니다. 그 시간이 그리도 짧은지를 알면 그 땐 이미 그 분은 못난 놈의 손이 닿지를 않는 어느 먼 곳에 계실것 입니다. 하점면 이강리는 처의 외가가 있는 곳이니, 한 번쯤은 친척간에 대소사에 만났겠군요.
변홍수님의 댓글
나도 어머님만 생각하면 맘이 메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