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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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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이 많던 제25회 스승의 날이 일주일 지났네요. 스승의 날
우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스승의 날 유감’ 이라는 글을 올렸었
는데 선배님들께서 현재 우리 교육에 대하여 많은 걱정과 방향을
제시해주셔서 교육현장 일선에 있는 저로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 가까워 오면 제일 먼저 생각나고 보고 싶은
선생님이 계셔 그 분에 대하여 동문들에게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70년대 인고를 다녔던 분이면 누구나 다 아시는 선생님으로 음악을
가르치셨던 최.J.H.선생님 아실겁니다. 선생님 존함 뒤를 왜 이니셜
로 표시했는지 궁금하시죠? 그때 학창시절을 보냈던 동문들 중에는
그 선생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 같아...
또는 제가 얘기하는 부분에서 그 분에 대해 누를 끼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 이니셜로 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문들께서 그 분하면 생각나는 부분이 지금 말하는 ‘명품’일 것
입니다. 명품=최선생님 이 상관적인 관계는 수업시간에 수없이 들었
던 얘기일겁니다. 우선 그 당시 그 분이 항상 자랑하시던 소지품을
살펴보면 국내에 몇 개 없는 것들로 PARKER57 만년필, 프랑스 듀퐁
금장라이터(그 당시 30만원 상당), 프랑스제 마비스 선글러스, 등이
었으며 입고 계신 양복도 영국 런던에서 원단을 수입해 여기서 재단
한 양복을 입고 계셨으며, 좀 스산한 날이면 영국제 버벌리 레인코트
을 걸치고 출근하신 적이 계셨습니다. 음악시간이 되면 또 국내에선
몇 개 안되는 것이라며 소장하고 있던 릴녹음기로 가끔 명곡을 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동문들께서 기억하고 부분은 음악실기 시험일 것
입니다. 선천적 음치이신 동문들께서는 무척 괴로운 시간이었으라
생각됩니다. 저도 2학년때 중창으로 음악실기시험을 보았는데 노래
못 부른다. 화음이 전혀 안맞는다. 연습이 부족했다 등으로 동창들이
무지하게 매를 맞았던 기억..그 아픈 기억(저는 노래좀 하는 편이라
그것으로 별로 맞은 기억이 없지만.ㅋㅋㅋ)들을 동문들은 가지고
계실겁니다. 부모가 그렇게 낳아주었는데 어떡하란 말인가하는
불만과 함께요...
저도 학창시절을 통틀어 제대로 맞아 본 적은 그 선생님에 대한
기억뿐이 없습니다.
특히 제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2학년 주번활동시 아침 일찍
집합시켰는데 지각하여 못나왔다 하여 그분이 주번선생님으로서
교실로 찾아오셔서 죽도록 맞았던 적이 있는데 제 일생 뼈아픈 기억
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 분에 대한 기억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을 선택, 1980년 3월 2일 인천기계공고
로 발령받아 처음 교무실에서 부임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임인사를 막 끝나고 돌아서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앞에 갑자기 웃으시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 최선생님이셨습니다. 기억력도 좋으시지.교장선생님이 인사할
때 제 이름을 잘못 말하셨는데 그걸 지적하시면서 반갑다며 손을
잡아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젠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명성이 높으셨던 최선생님..우리 은사님과 그 제자인 내가 함께 한
직장에서 근무해야 한다고 하니 앞이 컴컴하였습니다.
그때 최선생님은 제가 졸업한 후 몇 년 인고에 몇 년 더 근무하다
인천기계공고로 전근오시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에 저의 교직생활은 동문들께서 충분히 상상했으라 믿습
니다. 밴드부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행사출장이 많았습니다. 출장
가시면 음악과는 그분 한분뿐이라 보강해 주실 분이 안계셔 최선
생님 보강은 제 전담, 한달에 한번 있었던 그분 숙직도 총각이라고
대신 근무 등등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고달팠다라고 보다는 은사님을 위하여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근무하면서 두 달이 지난 후 스승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한 학교에 은사님이 계시니 안 찾아뵐 수 없어 스승의 날 저녁 경인
상가 뒤에 있는 그분 댁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반갑게 맞이해주시
면서 그 분이 소장하고 계신 명품자랑에 빠져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첫 번째로 커피를 주시면서 브라질에서 직수입한 원두를 갈아 만든
커피라며 처음 맛볼 것이라며 구수한 커피를 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커피는 음악을 들으며 마셔야 제 맛을 느낀다며 거실에 방음
시설과 마련된 메켄토시 오디오전축을 트시는 것이었습니다.
국내에 4개뿐이 없다고 하시며 가격은 700만원 정도가 된다고 하시
더군요. 그때 제 봉급이 20만원 정도였으니까 몇 년동안 봉급을 몽땅
투자해 살 수 있는 가격이었지요.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원판만 들을
수 있지 해적판은 잡음이 많아 들을 수 없다시며 또 FM수신시 판에
먼지끌리는 소리까지 들린다나요..(나중에 뻥인지 알았지만.. ㅋㅋㅋ).
나무로 만든 스피커 받침이 있는데 받침 하나에 15만원이라고 하시더
군요. 두 번째로 내오시는 것이 카메라였는데 그전에 독일제 핫셀브라
도를 갖고 계셨는데 마음에 안들어 가격이 그당시 350만원정도 간다
는 라이카SN2를 새로 구입하셨다며 국내에 자기말고 한사람이 더 갖
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한참 설명하시는데 그때 초등학교 다니는 아드
님이 아빠 이거하면서 영사기를 들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그 외에 이것 저것 소장하고 계신 명품예찬에 2시간을 보내고
선생님을 댁을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시다 몇 달 후 선생님 부친
께서 재정보증을 잘못 서시는 바람에 집재산 모두 가압류되시는 고초
를 겪게 되셨습니다. 그래도 그 어려운 상황에 제자를 사랑하시는 마
음에 제자들에게 명품의 음악을 들려주시기 위해 학교 음악실에 메켄
토시 오디오전축을 갖다놓으시고 불후의 명곡을 들려주시기도 하셨
답니다. 결국은 집안 일이 잘 해결되지 않아 사표를 내시고 전가족이
동생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가셨습니다. 그리고 20여년동안 소식이
두절되었습니다. 정말로 선생님에 기억 아직도 생생합니다.
뵙고 싶습니다. 최선생님..
혹시 최선생님에 대한 근황에 대해서 아시는 분..저에게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워싱턴에 사신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혹시 미국에 계신 동문들께서
한번 수소문해주시면 안될까요..
댓글목록 0
이환성(70회)님의 댓글
선생님 부친께서 재정보증을 잘못 서시는 바람에 집재산 모두 가압류되시는 고초
===>아마도 미국에선 더멋진 생을 보내실겁니다...
이동열님의 댓글
선생님 근황에 대하여 잘알고계신분이 인천 음악선생님중에 정년퇴직하신 최한섭선생님이라고 계십니다,.그분이 잘알고 계시드만요. 울가게서 알게 되신분이져
윤인문님의 댓글
동열이형! 그 분 성함을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네요..그 분 성함은 채한석선생님이시고 북인천여중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하시고 지금은 인천청소년교향악단 단장님으로 계시지요. 저도 잘 아는 분입니다. 인주옥에서 자주 뵙지요..술도 같이 하구요.잘알았습니다.
그분에게 물어보면 되겠군요.. 감사*^^*
이동열님의 댓글
걍 들리는 소리가 최한섭 같드라니,,ㅋㅋㅋㅋ
석광익님의 댓글
최장호 선생님 (이니셜하신 성함을 이렇게 밝혀도되나?)... 우리때는 인기 엄청 좋았던 선생님 이셨어요. 명풍자랑이야 그 분 특기셨지만 구타 같은건 전혀 안하셨거든요. 야구응원가면 손수 트럼펫도 불고 하셨어요. 소문엔 타여학교 학생들에게 까지도 인기 짱이셨다고....여하튼 우리에겐 좋은 인상만 남아있는 분입니다
석광익님의 댓글
아 그리고 참.... 그 선생님 우리땐 석바위에 사셨나봐요. 당시 나도 석바위서 자취를 했었는데 한 일요일 목욕탕에서 만난거예요. 물론 알몸으로.,,,, 거 참 스승님 벗으신 아랫도리 뵙기 송구 하더라구요. 해서 허둥지둥 인사만 하고 저 쪽 구석에 가 있는데 부르시는 거예요 "야, 광익아! 와서 등좀 밀어라!"........
차안수님의 댓글
인고 출전가를 작곡하셨다고 ? ....
윤용혁님의 댓글
2학년때 문과반 2반 저의 담임선생님이셨지요.저희때는 광익이 말대로 정말 인기 좋으셨어요. 성격이 좀 급해서 다른 선생님과 다투신 적은 있으셔도 경희대 음대 콘탁,지휘과를 나오셨다고 자랑하셨는데 지휘과는 농담이었던 것 같습니다.음악시험을 이중창으로 꼭 보셧는데 화음이 안맞을 시 시커먼 마포로 얼굴을 닦아
윤용혁님의 댓글
주시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터푸하신 몸짓 헤어스타일 인기가 좋으셨죠.
저도 선생님 그립습니다.
이종학님의 댓글
아!그때는 왜?짝퉁을 생각치 못했을까? 나도 그때 "NIKO"운동화를 신었었는데...암튼 우리에게 고교선생님들은 정감어리고 아련한 추억입니다.윤교장! 안녕.
오태성[70회]님의 댓글
후배를 통해서 최장호형님의 [오해마시길~~~우리때 그분이 교생 실습을 처음 나오셔서 형님,형님 해도애교로 봐주셨음] 소식을 들으니 감개 무량하군요. 영국제 오리지날 라이터 이태리제 악어 가죽벨트 등등자랑거리가 어찌 하나 둘이겠읍니까?그분한태 들은 에피소드 하나소개 할까요?
오태성[70회]님의 댓글
그분은 배문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트럼펱을 불엇구요.경희대학 주최 콩쿨대회에서 1등하여 특기생 으로 경희대를 다녔고 군아대에서 군대 생활을 하셨는데 바로 위 고참이 배문고 후배였는데 이놈[?]이찍어 놓고고롭히 는데 하소연 할데가 없어서 화장실 가서 통곡 한적이 한두번이아니 였담니다.장호 선생님나도 보고싶군
오태성[70회]님의 댓글
후배를 통해서 최장호형님의 [오해마시길~~~우리때 그분이 교생 실습을 처음 나오셔서 형님,형님 해도애교로 봐주셨음] 소식을 들으니 감개 무량하군요. 영국제 오리지날 라이터 이태리제 악어 가죽벨트 등등자랑거리가 어찌 하나 둘이겠읍니까?그분한태 들은 에피소드 하나소개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