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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형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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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형이 좋아>
어려서부터 잘 먹어 튼실한 형은 장난이 무척이나 심하였다.
남의 다 자란 가지를 따 뱃속에 가져오다 어머니한테 들켜 혼나고 그 집에 가서 정중히 사과드리고 갖다 주고 오라고 하자 달려가 그 집 담벼락에서 앞마당으로 던져 놓고 오던 형 이였다.
중학교부터 인천으로 유학을 가서 자취방 하숙집을 전전하며 소외감에 일찍 투쟁정신을 길러 스땅딸의 ‘적과 흑’ 히틀러의 ‘나의 투쟁’ 등의 책을 즐겨 읽었다.
방학 중 집에 내려오면 나는 형이 놀아주게 되서 좋았지만, 형은 늘 불만이 많았고 처음 2~3일은 잘 지내다가 밖에 나가 다시 사고를 치곤했다.
시골이라 사고라치면 산에 가 나무한다고 나무는 안하고 산소가에 불을 놓다가 바람이 불어 산불을 내버린 것이었다.
그 불은 동네 상여막까지 다 태울 뻔 하였다.
또 다른 일화를 말하자면, 아버지 통근할 때 이용하시던 자전거를 끌고나가 핸들 꺾어오기, 아버지가 아끼시던 단화를 산에 신고 나가 나무그렁에 찢어오기, 동네 사랑방에 놀러가 고무신짝 바꿔오기, 떼 숨길락 하다 변기통에 발 빠져 독이 올라 피부병으로 고생하기, 하숙집에서 옴을 옮겨와 온 가족 겨울밤 잠 못 이루도록 긁적거리게 하는 등...
무수한 사고를 잘치고 다녔는데 정말 놀부수준의 일들을 잘 벌리곤 하였다.
형과의 학창시절 사연은 “악몽의 여름휴가” 와 “옷이 뭐길래”로 대신 하고자 한다.
최근에 형이 국궁에 푹 빠져 활을 사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가 활포를 설치하고 놀아보자고 하였다.
개량형 국궁이 삼십여 만원을 한다고 하여 온라인으로 돈을 부쳐주니 먼저 국궁입문의 자세부터 고쳐야 한다며 입문서를 보내준다고 하기에 fax(팩스)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팩스의 용지 한통이 다 없어지도록 입문서를 계속 보내왔다.
입문서를 필독하고 국궁인의 자세를 꼭 갖춰야만 제대로된 국궁을 할 수 있다며 굳은 의지와 경건한 마음가짐도 빼먹지 말라고 충고까지 하던 형이였다.
드디어 추석 날.... 형이 가져온 활을 각자 들고 조카가 설치한 과녁 앞에 서서 활시위를 당기게 되었다.
옆에서는 조카들이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형은 근엄한 표정으로 두터운 허리띠를 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활을 힘껏 당겼다.
그러나 힘껏 활을 당기던 형의 화살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는 것이였다.
이때 어디선가 힘 없이 발 아래 툭 떨어지는 화살....
순간 분위기는 웃음바다가 되어버렸고, 형의 그 민망하던 표정이란...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활을 당기기 전, 국궁의 고수가 하듯 근엄한 표정으로 맘껏 폼을 내던 형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형은 이번기회를 만회하려는 듯, 제 2발을 힘껏 당겼다.
그러나 화살은 또 다시 보이지가 않았고 수초후, 화살은 노친네 오줌발처럼 맥없이 첫발보다 더 가까운 발 아래 툭 떨어지고 말았다.
모두가 어이없어 황당해하며 배꼽을 잡고 웃어 버렸다.
머쓱해진 형은 잠깐동안 원인분석을 하더니만, 손깍지를 거꾸로 껴서 그렇다고 혼자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막망타궁을 늘 외치며 절대로 자신의 활은 남에게 빌려주어서는 안된다고 고집을 피우던 형이 였는데 말이다.
한번은 여름휴가 때의 일이였다.
형은 오십대의 몸을 이끌고 한강에서 수상스키를 타게 되었는데 초보자 강습시에 보트의 측면에 붙은 봉을 잡고 타다가 힘에 부쳐 놓치는 바람에 배 후미에 옆구리를 다쳐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져 물에서 나오지도 못할 정도였다. 정말 큰일 날뻔 하였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서서 달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자신의 발 아래를 쳐다보다 고꾸라져, 수상스키가 벗겨지지 않는 통에, 발목을 크게 다쳐 퉁퉁부은 발을 이끌고 휴가지에서 돌아와야만 했다.
그래도 나는 그런 우리 형이 좋다.
온갖 실수속에 묻어나는 인간적인 면이 있어서 좋다.
완벽한 사람보다 실수를 통해 우리 가족들에게 엔돌핀을 선사하는 우리 형이 나는 너무나 좋을뿐이다.
지금도 통일정책을 이끌며 국가에 봉사하는 형을 바라보며 통일정책에서는 이러한 실수야 없겠지만 형의 따뜻한 인간미가 분명 북녘땅에도 전해지리라 믿는다.
댓글목록 0
김형백님의 댓글
오랜만에 글 올리셨습니다.
형수님은 속 좀 태우셨겠네요.
감사합니다. 마리산 아래서 태어난 이가!
관리자님의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