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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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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초등학교 일학년인 나는 언제나 아버지의 뒤를 따라 종종 걸음으로
아랫마을 학교로 갔다.
당시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로 교무주임을 맡고 계셨는데
아침 조회시간 구령대에서 전교생을 향하여 호령하실 때면
학교가 떠나가는 것 같고 윗마을까지 들려 마이크라는 별명을
가지셨다.
걸음걸이가 얼마나 빠르신지 내가 아버지를 쫒아가려면 거의
달음박질을 해야 아버지 뒤를 따를 수 있었다.
3월 비오는 날 아침 이날은 아버지가 신작로를 피해서 지름길인
양지께 논두렁길을 택하셨다.
비바람은 불고 형에게서 물려받은 우비는 영국인 신부님이
구호물품으로 주셨는지 영국아이들 서너 살짜리 용이라 종이가방을
메고 입으니 꼭 껴 팔도 내밀 수 없어 몸도 가누기가 정말 어려웠다.
좁은 논두렁을 아버지께서는 저 만치 앞에서 성큼성큼 잘도 걸으셨다.
그러나 나는 비틀 비틀 균형 잡으며 걷기가 보통일이 아닌 것이 팔이
우비 속에 갇혀 더욱 힘들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비바람에 기우뚱 중심을 잃고 갈아엎어 물이 찬
논으로 나자빠졌다.
코 속으로 물은 차오르고 일어날 수는 없고 거의 울상이 되어 버둥거리며
아버지를 부르니 못 들으시고 계속 걸어가시는 것이 아닌가?
아마 접시에 코 빠트리고 죽는 다는 속담이 이런 경우에 하는 말인가 보다.
악을 써서 아버지를 부르니 그때서야 뒤를 바라 다 보시고 달려와
나를 논바닥에서 건져내 주셨다. 정말 얕은 물에 빠져 죽는 줄 알았다.
어린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갑자기 등을 내미시고 학교 일학년
교실까지 업어다 내려놓으셨다.
아버지의 등이 그렇게 따듯한지는 태어나 처음 알았다.
나는 으쓱 기분이 좋았으나 반 친구들의 애미라는 놀림에 한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다.
새로운 책과 공책 그리고 당시 두 개 반이었는데 남자담임선생님은
아코디언을 연주해 장단을 맞춰 병아리처럼 줄줄 따르며 운동장을 돌았고
예쁜 얼굴의 여자선생님이 “하나 둘” 하면 우리들은 “셋 넷”하며 잘도
재식훈련을 하였다.
나는 국어 과목을 좋아 하였는데 지금도 생각나는 대목이
“아가 아가 우리아가”, “바둑아 이리와 나하고 놀자”
그리고 “영이와 철수”덕분에 이 세상에 아이들 이름이 다
영이와 철수인줄 알았다.
받아쓰기를 잘하면 담임선생님이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시험지에
그려 주시는데 몇 번 감기느냐에 따라 그날 성적이 좌우 되었다.
나무 책상에는 두 명씩 여학생과 짝을 이뤄 앉았는데 내 짝꿍 여학생을
괴롭히다 그 여학생에게 연필심으로 허벅지를 찔려 그날 아파 죽는 줄 알았다.
다행히 다른 여학생이랑 짝꿍이 되었는데 그 애는 뽀얀 얼굴에 머리를
길게 두 줄로 땋아 내린 통통하고 예쁘고 마음씨 고운 그런 애였다.
집도 잘 살아 미술시간에 나를 포함 대부분 애들은 초로 만든 불량
크레용을 썼으나 그 애 만큼은 크레파스라는 미제용품을 쓰니 정말 부러웠다.
다행히 그 애와 짝꿍이니 언제든지 빌려주고 질 좋은 도화지는
그 애가 내 것까지 대다시피 하였다.
철 지난 크리스마스카드도 가져와 살짝 나의 책상서랍에 넣어주니
누구에게 들킬까봐 아주 조심스러웠다.
노래도 잘하고 무엇보다도 아이의 마음씨가 고와 나의 어린마음에도
연정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저녁에 집에 와 잠들 때면
그 애 생각으로 뒤척였고 다음날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빨리 자라 그 애랑 결혼하리라는 맹랑한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사랑을 원수로 갚는다고 결정적인 나의 실수가 있었으니
비오는 날 그 애가 화장실을 다녀 올 때 남자애들이랑 모여 있다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그만 그 애를 떠 밀어 철조망으로 된 학교 울타리로
넘어져 손가락을 찔리게 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시치미를 뚝 뗐다.
차라리 솔직히 남자답게 나는 네가 좋아 라고 할 것이지
그 착한 여학생을 떠 밀어 손가락에서 피가 나게 한단 말인가?
그래도 그 애는 순진하게 내가 그런 줄 모르고 짓궂은 다른 남자애를
지목하니 양심의 가책으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 일로 서먹해 지고 얼마 후 그 애는 서울로 전학을 가 버렸다.
진정한 사과 한마디 못한 채 나의 첫사랑은 나의 곁을 떠나버렸다.
매년 새 학기는 돌아오건만 어릴 적 사과 한마디 못 받고 훌쩍 떠나버린
옛 친구는 지금 하늘아래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댓글목록 0
이동열님의 댓글
제가 줄바꾸기등,,,수정했음니당^^
태동철님의 댓글
지금 이라도 찾아서 두 손꼭잡고 사과 깨끗하게 쥐여 주고 차 한잔 나누시면
사는 것이 한결 부드러울텐데요???
할머니 티 나는것도 아름답다고 단서 달아서 찾으세요!1
허광회님의 댓글
좋아하는 친구는 언제나 못살게 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