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도!
기억하시는 선. 후배동문 많이 계실 것이다.
정규과목으로 중1 , 중2 .고1 . 근 3 년 유도를 이 분께 배웠다.
기초교육을 철저히 한다는 명목으로 누워서 고개들기는
매 유도시간마다 철저히 이행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눈 길에 넘어지면 머리가 땅에 닿지 않는다.
그 분은 유도실력뿐 아니라 ,삔 뼈 맞추기에도 능하다는 소문도 있었다.
마침 살고있던 집근처에 있는 뼈접골소에도
학교 퇴근 후에 드나드신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중2 년인 내겐 학교내에서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른 바 악랄한 (죄송) 선생님 중의 한 분이셨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리 계셨다.
예를 들면,매를 전혀 아끼지 않으셨고, 중1 어린 학생에게도 교문에서 복장불량
걸렸다하면, 사타구니 안쪽을 힘껏 꼬집어 뜯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그런 분이셨다.
물론 고등학교생들에게는 몽둥이가 춤춘달까. 정말 멀리보이면 돌아서 가야하는
그런정도다. 두발불량엔 어김없이 바리깡(이발기계) 자욱을 머리 복판에 내는
그런 재주도 있으시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교문에서 안 걸리면 유도시간을 제외하고는 별반 마주칠
일이 없었다. 학교 등교시간을 교문에서 경계근무(?)< 군 사단 정문 헌병보다
더 무서울거다>를 시작하기 前으로 하고
6년 내내 거의 수문장(규율부원,훈육선생,야마모도등)들을 만나지 않았다.
어느날 발이 삐끗하여 절룩거리며 다녔는데, 그다지 심하지 않아서
그 당시 유행하던 만병통치약 안티프라민(?)을 바르고 낫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주변의 권유도 있었고, 야마모도 선생을 찾아가보려도 했지만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낫지를 않고 유도시간이 돌아왔다.
한 사람 한사람 차례차례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낙법을 했는데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아픈 발 때문에
절룩거리며 뛰다가 낙법을 하려는 순간 자신이 없어 멈쳐버렸다.
장내는 폭소로 가득했고 ,변명은 해야겠고, 이실직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선생님은 말없이 다리를 주물르기 시작했다. 안티프라민 바른 살은
때가 되어 선생님 손에 묻혀졌고,정말 안스러럽고 부끄럽고 어쩔 줄 몰랐었다.
그러나 더럽다는 핀잔도 없었고, 치료이후에는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하는
혜택까지 얻었다. 따뜻한 마음을 느꼈었고. 열심히 낙법하는 친구들 앞에
자랑스럽기까지 했었다.
과연 용한 의사였다. 다음날부터 빠르게 회복이 되었다.
그 후 군 생활 중 인사차, 어느 선배님을 찾았을 때 그 집에 살고 계신 걸
알았었는데 ,71회 30주년 기념사진에서 얼핏 보이는듯하다.
36년은 더 된 얘기 같은데 ,
선생님 건강하시죠?
기회가 되면 이 이야기를 하면서 소주 한 잔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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