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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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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말 아버지는 초임교장 발령지인 안성의 조그만 시골 학교로 가시게 되었다.
박봉에 시달리면서 세 아들 대학 등록금마련 하느라 허리가 휠 정도로 마음고생 하시며 토요일에 집에 오셨다가 일요일에 다시 내려가시는 생활을 반복하셨다.
어머니가 미용기술이 있으셔서 용돈을 아끼시느라 아버지 머리를 손수 잘라 주셨고 일주일 분의 밑반찬을 가지고 떠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뵙기에도 안쓰러웠다.
아버지가 일요일 안성으로 떠난 후 형과 누나는 형의 과다한 용돈 사용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져 심하게 싸우니 아침부터 뒤숭숭하였다.
한나절이 지났을까 마당 앞에 오토바이가 들이 닥치며 우체부 아저씨가 전보 한 통을 급히 전한다.
내용인즉 “부친사망 급경래” 말 그대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급히 오라는 전보 내용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비보에 어머니는 몸서리 치며 통곡하고 온 가족이 울음바다를 이루니 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는 없었다.
아침에 떠나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다짐하며 울음을 삼키며 사태 수습을 위해 이웃에 있는 큰아버지 댁으로 뛰어내려가 사촌 큰형님에게 자초지종을 전하고 곧바로 전화가 있는 학교근처 가게 집으로 가서 교환을 부르는 자석식전화로 아버지가 계신 학교로 연락을 취해도 도무지 통화가 이뤄지지 않으니 입술은 타 들어가고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정말 아버지가 돌아 가신 건가? 아침에 가시다 혹시 교통사고가 나서 잘못된 것인가?
별에 별 생각이 떠올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당시 큰 아버님도 위암말기로 시한부 삶을 살고 계시는데 아버지까지 잘못된다면 집안에 이런 불행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삼형제는 앞으로 어떻게 하란 말인가?
눈앞이 캄캄하였다.
이곳 강화에서 멀리 안성까지 일주일마다 오가시면서 아들 셋 대학학비 대시느라 자취생활로 입을 것 먹을 것 아끼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만약에 아버지가 잘못되신다면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였다.
형은 무작정 안성으로 달려갔고 나는 우체국에 재차 확인하니 수신자 이름은 맞고 주소가 다른 집이고 발신지는 해남이며 장인이 돌아가셨다고 사위에게 보낸 전보라는 것이다. 형과 그 집 사위의 이름이 비슷하여 우체국에서도 정확히 확인도 제대로 않고 우리집으로 보내왔으니 그리고 전보 내용만 가지고 울고불고한 우리 삼형제는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말이 안 나오고 어이가 없었다. 잘못된 전보 한 통으로 이런 엄청난 해프닝이 벌어졌던 것이다.
안성 까지 도착한 형 울면서 아버지를 찾으니 영문을 모르시는 아버지 “너 웬일이냐?” 오히려 반문하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환생한 줄 알고 깜짝 놀라 멀뚱거리다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니 정말 어이가 없는 사건으로 세월이 흘러도 잊혀 지지가 않는다.
우체국장까지 찾아와 정중히 사과하고 동네 어른들 말씀이 이제 아버지 오래 사실 테니 두고 보라며 위로 해주시니 그 동안 쌓였던 화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아무튼 나의 소중한 아버지가 살아계시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감사 드렸다.
45년간의 교직생활을 무사히 마치시고 팔순을 넘기신 나이에도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왕성히 하시고 줄넘기와 아령으로 근육을 다지며 건강한 노후생활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옛날 그 사건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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