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흔들리는 법치(法治)(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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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25. 1. 9)
흔들리는 법치(法治)
/원현린 주필(主筆)
원현린 주필
푸른 뱀의 해, 을사년(乙巳年) 벽두부터 한반도 정치 상황이 요동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이 위헌(違憲)이라 하여 대통령이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를 당하고, 그 위법성을 물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의해 체포영장 집행 시도로 한 해를 열고 있는 우리 정치다. 정계 지도부 인사들은 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올 한 해 정치 행보에 나서고 있다.
과연 오늘 국내 정치 상황을 이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한 인사들이 묵념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오직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도록 해 주십사 하고 호국영령(護國英靈)께 빌지나 않았는지. 나라가 위난에 처하거나 치자(治者)가 정도를 벗어나려 할 때 정(正)을 지키고 사(邪)를 배척하라는 지부상소(持斧上疏:죽음을 무릅쓰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머리를 쳐 달라는 뜻으로 도끼를 지니고 올리는 상소)하나 없는 나라였던가. 지당대신(至當大臣)은 차고 넘치지만 현명한 책사(策士) 하나 없다.
작금의 정치 상황을 보고 있는 국민들은 헷갈린다. 국민들은 보도되는 뉴스를 보고 듣고 판단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오로지 자신의 진영(陣營)논리에 따라 지지하는 것은 아닌지? 오늘 대한민국의 정국은 한마디로 말해 혼돈(混沌) 상태다. 혼돈은 온갖 사물이나 정신적 가치가 뒤섞여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더 이상 법치국가가 아니다. 수사기관 간에도 견제와 다툼이라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공수처가 수사에 나서자 다른 수사기관이 비판하는 나라다. 법을 위반했다 하여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공수처장과 경찰을 상대 측이 고발한다고 하는 등 전례 없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사회다. 같은 나라의 헌법과 법률마저 진영에 따라 해석이 다른 우리 정치권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는 점이다.
법을 우습게 여기기는 여야 공히 마찬가지다. 툭하면 ‘법적 대응’을 한다고 한다.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조차도.
지금 우리의 헌법상 국가기관인 사법부(司法府)는 사법부(死法府)로, 입법부(立法府)는 통법부(通法府)가 돼 가고 있다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러고도 나라가 존속됨이 희한하다.
서로가 상대 진영 주장을 ‘픽션(fiction)’이라 몰아붙이곤 한다. 협치는 간데없다. 각자의 주장이 정의(正義)다. 적군과의 싸움도 아닌데 갈수록 끝없는 공방(攻防)으로 내전(內戰)이 격화하고 있다. 자괴감에 밤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다는 국민들이다.
우리는 과연 민주국가인가? 진영 간 다툼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막히곤 한다. 양측 모두 이구동성으로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강조하곤 한다. 더하여 호헌(護憲)을 부르짖으며 다투고 있다. 국민을 위하는 정치, 헌법을 수호한다는 정치의 결과가 이 모양 이 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외신들은 한국의 현 정국 상황을 두고 "한국이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민주주의가 깡그리 무너졌다"고 혹평하는 기사를 타전하고 있다.
흔히 서양 언론인들이 한국 민주주의를 폄하할 때 언급하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씁쓸하지만 이들 예언이 딱 들어맞아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필자는 새로운 시간 위에는 새로운 마음을 담아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누차에 걸쳐 역설했다. 며칠 전 소한(小寒) 날 아침에 창밖을 내다보니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천지가 하얗게 뒤덮여 설국을 방불케 했다.
마치 혼탁한 세상을 정화(淨化)라도 하려는 듯. 널리 회자(膾炙)되는 조선조 문신 이양연(李亮淵)의 경세(警世) 시구(詩句)가 떠오른다. "눈 내린 아침 들판을 걸어가니, 길을 여는 것은 나로부터라. 감히 잠시도 구불구불 걷지 못함은, 뒤에 오는 사람을 두려워해서라네(雪朝野中行(설조야중행), 開路自我始(개로자아시). 不敢少위이(불감소위이), 恐誤後來子(공오후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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