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얼치기 진보와 구태의 보수가 싸우면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2. 3.27)
나채훈의 중국산책 /
얼치기 진보와 구태의 보수가 싸우면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① 이치에 닿지 않는 말로 그럴듯하게 둘러대는 구변 ② 논리학에서 얼른 보기에는 옳을 것 같은 거짓추론을 이르는 말. 이는 궤변에 대한 사전의 풀이다. 얼마 전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의 비례대표 예비후보라는 20대 여성이 제주도 강정마을에 건설되는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라고 해서 물의를 빚었다. 그녀는 군 당국이 해적 같은 짓을 해서 그렇게 불렀는데 뭐 잘못한 게 있느냐고 했다. 그 정당의 공동대표라는 사람은 “그런 표현, 그런 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물론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세력을 매도하는데 이 여성들의 발언을 동원하는 것도 그리 합당하지 않겠으나 적어도 해군을 해적이라 한 것은 궤변이다. 이보다 더한 궤변이 있을까.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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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국회의원이 되고 정치를 하려 하는가. 선거를 앞두고 마땅히 던져볼 만한 물음이다. 모범답안이 있다. 부국강병, 사회정의 구현, 행복한 사회건설 같은 것들인데 엄청 구태의연하다. 조금은 신선해 보이는 민주진보진영의 대답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여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를 실현하겠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하겠다. 원자력이나 핵을 당장 폐기하도록 추진하겠다. 노동3권을 보장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겠다. 빈부 상관없이 아이들 모두 평등하고 행복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국토 파괴 행위를 즉각 중지시키고 친환경적 생태와 녹지화를 이루겠다. 재벌의 탐욕을 억제하고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 돈의 시대가 아니라 삶의 시대를 열어 자율적인 인간 중심의 공동체를 만들겠다.
하지만 투표를 앞두고 그들 진영이 내놓은 후보들 면면을 살펴보면 참으로 팍팍한 현실이다. 돈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근본적인 변화를 만드는데 하등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인물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새 피든 올드보이든 오십보백보다. 정책면에서 큰 차이가 나는 듯한 보수진영의 주장도 별로 다르지 않다. 비슷하거나 비슷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진보, 보수 어느 한쪽이 얼치기이거나 구태답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신념의 진보도 명료한 보수도 없다 보니 만일 왜 정치를 하려느냐는 물음에 궤변을 늘어놓지 않고 “남들이 고생할 때 국회의원 신분으로 버젓이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이 있고, 성추행 같은 일에 연루가 돼도 적당히 둘러대면 오히려 유명세를 탈 수 있고, 선거법 정도는 1백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지 않는 정도에서 얼마든지 해도 차기 공천이 보장되고, 그리고 가문의 영광은 물론 의원직을 떠난 이후에도 월 120만원의 품위유지비를 받을 수 있어 얼마나 좋으냐”고 솔직히 대답했다가는 100% 낙선일 테니 그들만 탓할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득어망전(得魚忘筌), 득토망제(得兎忘蹄)’라 했다. 장자의 잡편(雜篇) <외물(外物)>에 나오는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리고, 토끼를 잡고 나면 올무(덫)를 잊어버리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전(筌)은 물고기를 잡는 통발인데(筌者所以在魚) / 물고기를 잡고 나면 잊어버린다(得魚而忘筌) / 제(蹄)는 토끼를 잡는 덫인데(蹄者所以在兎) / 토끼를 잡고 나면 잊어버린다(得兎而忘蹄) / 말[言]은 뜻을 전하는 것인데(言者所以在意) / 뜻을 얻으면 말을 잊는 것이다.(得意而忘言)
통발[筌]은 일종의 그물[網]이다. 그러니까 득어망전이나 득어망망(得魚忘網)이나 똑같이 고기를 잡으려 사용했던 기구를 정작 고기를 잡고나면 잊고 만다는 사실이다. 진실로 고기는 잃어버려도 그물은 챙겨야 할 텐데(忘魚得網) 말이다.
고기는 이를 테면 현상으로서 입후보자에게는 득표수에 해당하겠다. 반면에 그물은 선거 현상의 저변에 깔려있는 구조를 의미한다. 누가 다득표를 했든, 또 어떤 당이 다수당이 되었든 간에 그 현상이 일어난 4월 11일의 결과를 잊어버리든 잃어버리든 별 상관이 없을 수 있으나 그 결과를 낳게 한 구조, 즉 그물을 잊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얼치기와 구태가 서로 얽히다 보면 분명 그물을 잊기 십상이다. 아니 그물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가능성이 훨씬 크다. 왜 이겼는지 모르는 선거, 이기면 그저 득의양양이고 지면 그때부터 악다구니 치는 일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확실시 된다. 진정한 진보와 건전한 보수가 맞장 뜨는 날이 언제쯤 오려는지….
2012년 03월 27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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