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전화번호부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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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 3.28)
전화번호부
/( 857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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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로 전화가 개통된 지역은 서울과 인천이다. 1896년 궁내부(宮內部)가 덕수궁에 전화 시설을 마련해 인천감리서에 전화한 것이 그 남상이다. 당시에는 전화를 덕률풍(德律風) 등으로 불렀다.
1902년 3월에는 경인간에 민간 전화가 가설돼 비로소 전화시대를 맞았다. 그때의 전화기는 스웨덴 에릭슨 사가 제작한 자석식 단식교환기와 벽괘형(壁掛型)이었는데, 현재 인천개항박물관에 그 실체가 전시되어 있다.
점진적으로 전화가 보급되자, 소유자를 알리는 전화번호부도 발간됐다. 하지만 언제부터 발행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10여 년 전, 1920년대의 '경성ㆍ인천 전화번호부'가 일본의 '간다' 고서점에서 발견된 일이 있다.
우리 돈으로 무려 60만 원을 호가해 귀물 대접을 받았다. 후에 기회가 닿아 국내서 살펴볼 수 있었는데, 당대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망라돼 있었고, 각 기관, 단체의 소재지와 전화번호를 알 수 있는 '알짜 정보지'였다.
한글판 전화번호부가 인천에서 처음 발행된 것은 1946년 12월이었다. 그러나 이는 기록상으로만 남아 있는 사실이고, 실물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어느 책보다도 많이 발행됐으면서도 전해지지 않으니 미스터리다.
한국통신이 전화번호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66년이었다. 그 11년 뒤 한국통신이 민영화된 후부터 계속 발행량이 줄어들더니, 통신사간의 고객 빼내기가 문제가 되어 2008년부터는 '인명부' 편은 발행이 중지됐다고 한다. 최근 철 지난 '인명부'가 20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별일이다 싶지만, 따지고 보면 전화번호부만큼 훌륭한 '생활 문화사' 자료도 없다는 생각이다.
/객원논설위원
2012년 03월 2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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