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불감증이야말로 무서운 일이다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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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2. 4. 3)
나채훈의 중국산책 /
불감증이야말로 무서운 일이다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총선이 중반으로 치닫는데 유권자들의 관심이 시원치 않다고 선거운동 관련자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국민경선이니 공천혁명이니 요란스레 떠들었기에 ‘이번에는 좋은 후보가 넘쳐나 누굴 찍어야 할지 즐거운 고민을 할 줄 알았는데…’ 결국은 뇌물수수, 성추행 관련, 선거법을 상습적으로 어기는 한심한 인물들이 계파 나눠먹기, 밀실공천으로 출마했으니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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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감증은 며칠 전에 벌어진 서울남부지검 최모 검사의 여기자 성추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언론을 빼놓고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 법 질서를 지키는 검사의 이런 추태를 보면 중국에서 4대 미인을 선정할 때 나타난 여성에 대한 몰이해 이상의 왜곡 현상과도 맥을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즐거운 사라>를 쓴 마광수 교수는 몇 년 전 TV프로그램 <100분 토론>에 나와 “옛날에는 공부 잘하는 (여)학생하면 못생겼지만 이제는 예쁜 애들이 공부도 잘한다”며 섹시한 미인 예찬을 하며 “멋을 안 내는 여자는 게으르다.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해서 시청자들의 뜨거운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얼마 안 돼서 그런 인식이 별로 틀리지 않는다는 듯이 흐지부지되었다. 또 얼마 전 소설가 복거일 씨는 이화여대의 초청 강연에서 “여성은 결혼을 했어도 언제나 혼외정사의 의도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여성을 감시해야 한다”고 하면서 “남성은 (아내가 낳은) 자식일지라도 자신의 유전자를 가졌는지 확신할 수 없어 결국 다른 여성과 성적 관계를 가져야 한다” 등 빗나간 여성관을 말해 물의가 일어나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비슷한 양상이다. 복거일 씨는 진화생물학에 나오는 가족의 기원을 설명했을 뿐이라고 변명하는데 의외로 일반 여성들은 뭐 그럴 수 있지 않느냐는 반응이다. 웃지 않는 미녀로 잘 알려진 포사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녀와 망국(亡國)에 얽힌 고사를 사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 외적의 침입을 알려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봉화(烽火)가 어느 날 관리자의 실수로 타올랐다. 각 지방의 장수들은 놀라서 무장한 병력을 이끌고 부지런히 달려왔다. 수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결국 장수들과 병사들은 허탈하고 당황해서 어수선했는데 이를 본 왕후 포사가 배시시 웃었다. 절세미녀의 웃음에 주왕은 넋을 잃었고 이후 포사를 웃기기 위해 애꿎은 봉화불을 계속 올렸다. 마침내 각지의 장수들은 봉화불이 올라도 ‘또 그녀를 웃기고 싶어진 모양이군’ 하고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이번에는 정말 북쪽의 오랑캐 군단이 쳐들어왔고 주왕은 잡혀 죽었다.
포사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없다. 아마 오랑캐 추장의 애첩이 되었을 것이다. 이 일을 두고 각지의 장수들에게 반복 경험을 하게 해서 불감증을 고착시키는 계략으로 분석하는 사람도 있고, 절세미녀의 폐해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과장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중국의 4대 미녀로 꼽는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의 경우 초선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소설에서 꾸며진 인물이다. 4대 미녀에 포사를 넣을 것이냐 초선을 넣을 것이냐 하고 의견이 분분했었다. ‘실재하지 않았던 여인을 선정해서는 곤란하다’는 측과 ‘나라를 오랑캐에게 팔아먹은 여인을 넣을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결과적으로 한족(漢族)우월주의가 이겼다. 그들이 이때 사용한 미끼는 ‘오랑캐를 이기기 위해 불감증을 유도한 죄.’ 미끼란 그걸 덥석 문 사람을 자괴감에 빠뜨리는 속성을 지닌 것. 미녀 논쟁에서 어떤 잘못(?)을 핑계댄 것이나 그걸 받아들인 것이나 매일반이라는 식의 얼렁뚱땅으로 이 논쟁은 수면 아래로 들어가 버렸다.
최근 이탈리라에서 38세의 여교사 마켈리 로스가 지나치게 매력적이라는 이유로 학부모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외신보도다. ‘섹시한 교사가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겠는가?’라고 불만을 내비치며 집단으로 전학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예쁜 게 죄일까?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여성 비하의 왜곡된 성의식이 나타난다는 그 당연한 경험을 수없이 하는 과정이 결국 불감증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여기자를 추행하고 나서 ‘술에 취해 식당종업원인지 알았다’고 둘러대는 뻔뻔함이나 그를 옹호하는 자들이 아직도 ‘예쁘지 않아 성추행을 당하지 않는 여인’을 들먹이며 이를 당연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2012년 04월 03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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