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외주공천의 성공은 ‘기해천수’에 있다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2. 2.14)
나채훈의 중국산책 /
외주공천의 성공은 ‘기해천수’에 있다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우리 사회는 모든 게 빠르다. 경제만 압축성장을 한 게 아니라 정치 변화도 그야말로 초고속이다. 개혁공천을 내건 여야의 이번 ‘외주공천’을 보고 있노라면 속도만큼은 광속(?)과 다름없다. 기성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조소가 극에 달했으니 어쩔 수 없는 까닭도 있겠으나 적어도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시스템 공천’ 약속이나 한명숙 대표의 ‘완전국민경선’ 천명은 일단 기대를 갖게 했었다. 그런데 너무 서두르는 탓인지 관객 입장에서 걱정이 앞선다. 새누리당은 자칫 ‘박근혜당’ 색채만 강화될 수 있다는 평가가 있고, 민주통합당은 여러 세력이 합친 만큼 나눠먹기식이 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있다. 양당의 공천심의기구가 마치 ‘우리 식당의 주방에는 요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새로 들어 왔으니 재료만큼은 싱싱한 것을 사용한다는 약속을 드린다’는 투의 외주공천이 비밀주의과 독식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두 여성지도자가 국민의 눈높이를 헤아리고 맞춰가려는 노력을 과소평가해서가 아니다. 서두른 탓에 ‘정치 안해봤다’는 거짓말로 새누리당의 공천위원 한 명이 하루 만에 사퇴하고, 민주통합당에서는 통합의 정신을 살리지 못했다는 반발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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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공천이 어느 정도 순기능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미흡하긴 했으나 공천이 계파간 대리전으로 흐르는 폐단을 막고, 돈 공천의 여지도 현저하게 줄여 놓았다. 각 당에 걸맞은 후보의 정체성이나 도덕성 판단은 물론 참신한 인재의 발굴도 용이해졌다. 하지만 지난 17대와 18대 국회를 돌아보라. 40%를 넘는 공천 물갈이를 했으나 구태는 여전했고 이번 19대는 전례없는 정치의 회오리를 맞이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의 정치 불신이나 정치인에 대한 조소는 ‘구태정치인’을 사전에 걸러내는 합리적 기준이 그동안 작동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즉, 외주공천의 단점과 문제점을 보완하지 않으면 또다시 ‘그 밥에 그 나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움이 도사리고 있다.
기해천수(祁奚薦讐)라는 고사가 있다. 나이 70세가 된 대장군 기해는 은퇴하고 싶다는 뜻을 임금에게 아뢰었는데 관례적으로 임금은 그에게 후임자를 추천하라고 했다. 기해는 해호(解狐)라는 장수를 천거했다. 임금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아니, 그 사람은 당신의 원수 아니오?”
“신은 나라를 위해 대장군 직책을 맡을 인재를 말씀드렸습니다. 개인적 원한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은 해호를 후임 대장군에 임명했다. 그런데 해호는 취임하기 전에 죽고 말았다. 임금은 다시 기해를 불러 다음 후보자를 추천하라고 했다. “기오(祈午)가 적임자입니다.” 임금은 또다시 놀란 표정으로 “기오는 그대 아들이 아니오” 하고 되물었다.
“그렇습니다만 신은 이번에도 적임자를 아뢴 것이지 제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은 고개를 끄덕이고 기해의 아들 기오를 대장군에 임명했다. 이는 춘추시대 진(晉)나라 도공(悼公) 때의 일이다.
‘외주공천’이 기해천수의 마음가짐을 잃게 되면 오히려 특정 세력의 패권을 국민의 눈높이라는 명분 하에 용인하는 최악의 결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수 없으려니와 제도의 성공 여부는 결국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4년마다 돌아오는 정당의 핵심 사업을 언제까지 외주에 맡길 것인지도 함께 생각했으면 싶다.
국민경선의 확대나 정치자금법 개정처럼 공천 개혁과 정당의 지속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면 결국 새누리당은 특정 정파나 인물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국민의 삶을 위하고 국민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할 테고, 민주통합당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실망에만 기대지 말고 국정을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 있는 태도로 국민을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해답의 출발은 이번 19대 공천이다. 물갈이랍시고 ‘이당저당’ 기웃거리는 정치 철새나, 허튼 짓을 다하면서 국회의원 배지나 노리려는 모리배, 그리고 국법을 밥 먹듯이 어기면서 으스대던 자들, 여성이나 장애인을 비하하기 일쑤인 마초들을 후보로 내놓는 어리석음은 이번에 끝장을 내야 한다. 신선하고 능력 있는 적임자는 얼마든지 많다.
2012년 02월 14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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