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경호(67회) 인천경제콘서트/올해의 끝자락에서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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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1.12.27)
인천경제콘서트/
올해의 끝자락에서
/이경호 영림목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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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호 영림목재 대표이사
이번 성탄절은 운좋게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보내게 됐다. 캐롤송 중의 하나인 화이트 크리스마스하면 역시 빙 크로스비나 팻 분의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가 우리 기억에 새롭다. 눈이 내린다는 것은 교통이 다소 불편하고 숲속의 새와 동물들의 먹이가 걱정된다 해도 역시 우리들 마음엔 그 무언가 포근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서설이 이 땅에 오염되고 비뚤어진 모든 사물들을 하얗게 깨끗이 덮어 주거나, 마음의 고통을 가진 이들을 따뜻하게 포용해주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듯 눈이 많이 내렸는데도 아파트란 곳에 살다보니 집앞의 눈을 쓸어볼 기회조차 없는 것 같다. 물론 새벽에 나가 경비원과 함께 눈을 쓴다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 또한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같은 동의 누구 몇 사람이라도 함께 나와주면 모를까 오해의 여지도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웬 눈 청소 이야기냐고? 아름다운 서정을 읊는 시인 도종환은 ‘눈을 쓸면서’에서 이렇게 속삭이며 눈 쓸어 보기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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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내 아직 어려서 눈물이 많고/ 오직 한 가지만을/ 애터지게 사랑하여/ 내 일상의 뜨락에 가득가득 눈들이 쌓일 때/ 당신은 젖은 빗자루로 내 앞의 길을 터주고/ 헐거운 내 열정의 빗장마다/ 세차게 못 박아주던 망치 소리였습니다. <중략> 당신은 아직도 허기처럼 내리는 이 눈발로/ 하늘의 양식을 빚어내고 계시렵니까/ 녹는 것들이 모여 물줄기 이루어가듯/ 이 땅에서 서로 뜨겁게 녹으며 사랑하면/ 짧은 이 삶이 고이어 영원으로 흐르지 않습니까.
눈이 내리면 곧 푸근해진다 했는데 이후 겨울 칼바람이 제법 매섭다. 눈이 녹음을 시샘하는 것인가. 아니면 세한(歲寒)의 문턱에 들어서는 연말이라 계절의 제 몫을 다 함인가. 심한 추위를 일컫는 말 중에 ‘세한에 송백(松柏)을 안다’가 있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른 기개는 추운 겨울이 되어야 안다는 말로 지사의 훌륭한 뜻과 기상은 나라가 어려울 때에야 알게 된다는 말이라 한다. 어떤 역경에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는다는 의미의 세한송백이란 사자성어도 있다. 세한삼우(歲寒三友)란 추운 겨울철에도 잘 견디는 소나무·대나무·매화나무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세한고절(歲寒孤節)은 대나무를 가리킨다. 고려 말의 충신 원천석은 그의 절개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눈 마자 휘여진 대를 뉘라셔 굽다턴고/ 구불 절(節)이면 눈 속에 프를 소냐/ 아마도 세한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세한고절 외에도 고고한 절개를 가리키는 고절이라는 말이 붙는 사자성어로는 매화를 칭송하는 아치고절(雅致孤節), 서릿발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외로이 버팀의 뜻으로써 국화를 칭송하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이 있다. 여기에 난초를 더하면 사군자(四君子)가 되는 것이다. 꽃 중의 꽃은 무엇일까. 물론 서일수 작사, 황문평 작곡으로 국민가요가 된 ‘꽃 중의 꽃’ 소재인 무궁화다. 밝고 기상이 넘치는 무궁화는 누가 뭐래도 우리 겨레의 꽃이다. 4분의 2박자, 트로트로 조금 느리게 나가긴 해도 멜로디가 흥겹다. 부르기도 쉽고 가사 흐름이 자연스러워 노래가 나온 지 반세기가 됐지만 늘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겨울의 ‘꽃 중의 꽃’은 무엇일까. 여러 답이 있겠으나 나뭇가지에 붙어 눈처럼 보이는 설화(雪花)로 하자. 눈이 내리고 쌓인 경치 설경, 눈이 쌓여 있는 골짜기 설계, 눈처럼 하얀 빛 설광, 눈이나 진흙 위의 기러기 발자국의 자취처럼 인생의 자취가 덧없음을 뜻하는 설니홍조(雪泥鴻爪), 눈 덮인 길 설정,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키는 설부화용(雪膚花容), 어려운 가운데서 학문에 힘쓴다는 설안형창(雪案螢窓), 눈 위에 비치는 달 설월, 옥매(玉梅) 다매(茶梅) 납매(臘梅) 수선(水仙) 등 겨울에도 즐길 수 있는 네 가지 꽃 설중사우(雪中四友), 흰 눈썹 설미 등의 단어를 봐도 눈꽃이 내뿜는 겨울의 이미지는 매우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 즈음 눈 덮인 세밑을 맞아 새해에도 독자 여러분의 건승을 빈다.
2011년 12월 2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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