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당명은 뭔지, 당심(黨心)은 있는지(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1.11.22)
나채훈의 중국산책 /
당명은 뭔지, 당심(黨心)은 있는지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곧 가시화될 모양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신당(新黨)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는 보도와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신당 관련 음모론과 설(說)이 분분하다. 구체적인 움직임은 12월 17일로 못박은 야권의 통합신당, 그리고 한반도선진화문화재단 박세일 이사장의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대(大)중도신당이지만 이외에 순수보수 신당, 박근혜 신당, 친이계 주류 일부가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안철수 교수와 합류하는 신당 등등 정치판에서 이름깨나 올리는 인사들은 모두 신당 움직임에 연루되어 있으니 가히 백가쟁명중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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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은 ‘민주주의의 기관차’라는 정당이 그동안 제몫을 못했다는 것인데 여야 정당의 기초체력이 크게 저하되고 당원과 유권자로부터 소외된 까닭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그동안 여당은 스타파워와 친이친박이라는 파벌 중심의 정치 엘리트들이 자파 이익에 매달린 때문이었고, 야당은 발육 부진에다 학습장애가 겹쳐 지리멸렬해졌다. 여야 공히 일부 ‘손오공 수준’의 싸움닭 역할은 있었지만 삼장법사로 상징되는 ‘진정한 정치의 도(道)를 추구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명분(名分)은 약한데 실리(實利) 추구에는 거의 혈안이 되다시피 했던 그동안의 정당 역할을 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신당 움직임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몹시 궁금한 것이 있다. 개화기 이후 이 나라 당(黨)은 보수―개화니 사대―독립 같은 이념을 내걸고 있으나 어찌 보면 우리 전통사회에서도 볼 수 있었던 끈질기고 뚜렷한 당심(黨心)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당명(黨名)은 스스로 표방한 것이 아니라 세간에 오르내리던 ‘분별의 호칭’이 그대로 당명이 되었다. <왕자의 난> 때 방석(芳碩)의 편을 든 정도전 등은 제당(弟黨)이었고 방원(芳遠)의 편을 든 하륜 등은 형당(兄黨)이었다. 방석과 방원은 배다른 형제이기 때문이었다. <단종애사>의 수양대군 편인 한명회 등은 숙당(叔黨), 단종 편인 사육신 등은 질당(姪黨)이었다. 수양과 단종이 숙질간. 그 이후 정파를 주도하는 인물의 거처가 있는 방향에 따라 당명이 형성되기도 했다. 정동 사는 심의겸(沈義謙)을 추종하는 무리는 서인, 동대문 쪽에 사는 김효원(金孝元)의 왕도정치에 추종하는 무리는 동인, 이후에 강온파가 갈라져 북악 밑에 사는 이발(李潑)의 무리는 북인, 온건파 우성전(禹性傳)이 남산 아래 살았기에 남인이란 당파의 이름이 생겼었다. 서인도 노대가(老大家) 송시열(宋時烈)을 따른다 해서 노론, 소장파 윤증을 따른다 해서 소론이었다.
이런 당명 탓에 우리는 사색당파라고 하면 이념도 비전도 없이 그저 자파 이익을 추구하느라 ‘박터지게 싸운’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 그들이 당파에 소속되면 자신만이 아니라 대대손손 당색(黨色)을 전승하여 변절·변심하지 않은 모습에 대해서는 관심을 쏟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전해지는 일화를 보면, 그들의 당심(黨心)과 당색(黨色)이 어찌나 철저했는지 청주 화양동에 있는 환장암의 스님은 사찰 입구에 드는 선비의 걸음걸이, 말투, 행동하는 모양새를 보고 노론·소론·남인·북인을 정확히 맞췄다고 하며, 소론의 부인들은 머리쪽을 추켜 찌고, 노론의 부인들은 치마 주름을 느슨하게 잡는 등 매무새부터 달리 했다고 한다. 영남의 선비 장여헌(張旅軒)이란 분은 딸이 남인 집안의 안씨(安氏) 가문으로 시집을 갔는데 그의 아들 안복준(安復駿)이 당시 권세를 쥐고 있던 서인들과 통교한다는 이유로 손자와 의절하고 말았다. 그가 죽을 때 손자가 문전에 와서 임종할 것을 애원했지만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당색과 당심은 그들의 인격은 물론 죽음보다 더 중한 의미로 수용되었다.
신당을 만들고, 새로운 이름을 짓고, 정강정책으로 거창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물론 필요할 테지만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정치 철새들만큼은 이번 기회에 멀리 쫓아버리고 진정한 당심을 굳게 다지는 일이 우선 필요하리라. 정치의 계절이 되면 국민들의 가슴에 강하게 불타오르는 하나의 소망이 있음을 그들부터 새겨달라는 당부다. 우국(憂國)의 마음으로 애민(愛民)의 자세로 사리사욕(私利私慾)을 던져버리고 일하십시오.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자세만큼은 제발 이번 기회에 확 털어버리십시오.
2011년 11월 22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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