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태국의 ‘물난리 구호’를 보면서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1.11.15)
나채훈의 중국산책 /
태국의 ‘물난리 구호’를 보면서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중국의 경제적 성공에 대해서 ‘통치 체제를 유지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맺은 결실로서 이와 함께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력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최근 태국의 물난리 소동에 잇달아 나왔다. 베이징 정부 입장에서 중국 남부 지방을 고향으로 하는 엄청난 거부들이 동남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결코 기분 나쁘지 않을 것이고, 역시 오랫동안 동남아에 터전을 둬온 화교들 입장에서 자신들의 모국이 세계적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도 나무랄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동남아 화교들 가운데 열심히 노력하여 이룬 부 가운데 많은 것들을 내놓아야 마땅한 경우가 있고, 특히 태국의 물난리를 구호하는데 스스로의 자성이 절실하다는 견해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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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안나무와 무화과나무는 태국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특히 두리안나무의 열매는 크기가 럭비공만하고 대단히 자극적이면서 마치 과숙성된 치즈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열매가 익어갈 무렵이면 어김없이 온 마을을 두리안의 진한 냄새가 뒤덮는데 외국인들은 그 악취(?)에 질겁하지만 현지인들은 ‘과일의 왕’이라고 부르며 진정 맛을 아는 미식가의 열매로 칭송한다. 이 열매 냄새는 먹었을 경우 며칠 동안 온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이 때문에 두리안을 가지고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을 정도다.
그런 두리안나무 줄기에 마치 비단뱀처럼 휘감고 자라는 것이 무화과나무. 두 나무는 뒤엉켜 자라면서 매년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다. 수명은 무화과나무 쪽이 약간 길지만 두 나무 모두 다른 한쪽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 이같은 공생관계는 흔히 태국인과 푸젠성 출신 화교들 가운데 가장 비밀스럽고 가장 부유한 차오처우계와의 관계로 묘사되기도 한다. 우선 차오처우계 화교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 방콕이며 그들은 은행과 기업은 물론 군부에도 막강한 연줄이 닿아 있고, 마약 밀매 같은 어두운 조직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헤로인 유통 조직에서 세계 최고 최대의 카르텔이 그들 수중에 있다는 보고서도 나와 있다. 그들이 전 세계에 공식 비공식으로 숨겨 놓은 돈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세계 최대의 돈을 굴리는 지하조직이라는 주장까지 나와 있다.
홍콩 경찰의 범죄 수사기록에 의하면 차오처우계의 비밀결사는 모든 화교들이 지하조직 가운데 가장 강력하며 배타적이고 파악이 안 되는 조직이라 한다. 이 조직의 배후에 있는 실세가 중국계와 혼혈인 탁신 집안. 이미 250년 전인 1767년 탁신은 일대를 점령하여 왕 대신에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확보한 바 있었다고 한다. 이 세금 추징 권한은 왕에게 가장 높은 수익액을 제시하여 따낸 것으로 백성들에게서 긁어모을 수 있는 한 최대한 긁어모아 자신들의 이익으로 삼았다. 결국 탁신은 왕위에 오르기도 했고 주위에 있는 차오처우계 사람들에게 귀족 작위를 수여하여 측근으로 삼으면서 왕실 무역과 암거래 일체를 장악하여 더욱 많은 부와 인적 네트워크를 쌓았다.
오늘의 태국 정치를 휘어잡고 있는 탁신 가문은 이런 배경에서 부와 권세를 장악하고 자기 세력을 전국적으로 실핏줄처럼 깔아놓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최근 태국을 휩쓴 물난리 와중에 경험 부족의 탁신 가문 여수상이 건재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요즘 TV를 보면 태국 물난리에 성금을 보내자는 자막이 눈에 뛴다. 물론 물난리를 겪은 태국의 수많은 이재민과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엄청난 부를 쌓아놓고 있는 탁신 가문에서 역사적인 부덕을 씻고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이재민 구제는 물론 태국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가진 자들이 권력과 공생하면서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도 정작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구걸하는 걸인에게 동전 몇 푼 던져주듯이 하는 행태는 동서고금은 물론 그쪽이나 우리 쪽이나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탁신 가문이 두리안의 냄새보다 더 지독한 역사의 음습한 실체와 냄새를 씻을 방법은 너무나 간단한데 말이다.
2011년 11월 15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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