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인광노(引光奴)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1.10.26)
인광노(引光奴)
/( 792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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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문화재계의 화제는 '인광노(引光奴)'였다. 끌 '인', 빛 '광', 종 '노'이니, 풀이하면 '빛을 이끄는 종'이다. '성냥'을 의인화한 그럴 듯한 이름이다. 성호 이익(李瀷)의 박물지 '성호사설' 만물문(萬物門)에 소개돼 있다.
"우리나라 풍속에는 화(樺)나무 껍질로 많이 만드는데,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 글 읽는 자가 만들었다. 부싯돌에 인화물질을 대고서 부쇠로 친 다음 유황에다가 불꽃을 일으키면 등불을 켜기가 쉽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물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었다. 1880년 개화승 이동인(李東仁)이 일본 수신사로 갔다가 귀국할 때 이보다 한걸음 앞선 발화구인 성냥을 가지고 와 세가와 친지들에게 선물로 나눠 주었다는 설만 전해졌다.
성냥이 본격적으로 생산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1900년 러시아 대장성이 발행한 '조선에 관한 기록'에 "1886년 제물포에 외국인들의 지휘 밑에 성냥공장이 개설되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중국에도 수출했다고 한다.
국내 최대의 성냥공장인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인천 금창동에 세워진 것은 1917년이었다. 광복 후 '대한성냥', '유사 지포라이터', 가스라이터 '불티나'로 '불 산업'의 맥을 이어왔지만, 역사적 기록이나 유물은 웬일인지 무시돼 왔다.
반면에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의 민속박물관에서는 성냥의 원조격인 '인광노'를 소중히 보관해 왔던 것이다.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도 수많은 우리 생활사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영원)가 그를 발견해 낸 것만 고맙게 느껴지는 상황이지만, 제것을 굳이 업신여겨온 것은 여러모로 부끄러운 일이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10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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