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시민의 정치가 높아진 걸로 될까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1.11. 1)
나채훈의 중국산책 /
시민의 정치가 높아진 걸로 될까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범야권단일후보가 당선됐다. 서울의 거의 전 지역에서 이겼고, 장차 이 나라를 끌고 깔 20∼40대에서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이겼다. 특권과 반칙의 정치, 재산 규모가 바로 자신의 가치와 신분을 대변한다고 여기는 강남귀족에 대한 시민사회의 심판이자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갈망이 낳은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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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선거를 보면서 정치지도자란 사람들이 보여준 모습은 너무 실망스러웠다. 아직도 그들은 조화(調和), 통일성(統一性), 긍정(肯定)이라는 미(美)의 관점에서 바라다보기에는 멀었고, 오히려 검은 폭로와 궤변, 강변이라는 추(醜)의 세계에 매몰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20∼40대의 젊은 표에 울렁증을 느끼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해도 ‘정치 불신을 초래하여 젊은 세대의 투표율을 어떻게든 낮춰보겠다’는 꼼수로 ‘검증’이라는 잣대를 네거티브로 도배질하고 상식 밖의 막말을 퍼붓는 모습은 참으로 꼴불견이었다. 정치는 뭣이고 정치지도자는 뭣 하는 사람들인가? 적어도 그들은 우리 국가와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지,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앞서 실행할 것과 뒤로 미뤄야 할 절차가 어떤 것인지, 정책에서 좋은 점을 나쁜 점보다 더 많이 찾아내는 지혜를 보여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당선이라는 명제에 매달려 국민을 피곤하고 짜증나게 만드는 모습뿐이었다. 그들이 이번의 선거 패배를 어떤 식으로 극복할지는 전적으로 그들이 선택할 문제이겠으나 그들이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그 피해가 국민에게 미친다는 사실 때문에 지도자의 세 가지 덕목을 새삼 끄집어내어 새겨야 할 필요를 느낀다.
중국이 부패 관리들을 청소할 때 걸었던 세 가지 지도자의 덕목 가운데 사명감(使命感)이 있었다. 사명감은 그 지위가 주는 무게를 감당하는 진지한 자세에서 출발한다. 서울시장 자리가 그들에게는 출세의 발판이고 가문의 영광으로 매김될지는 모르겠으나 이 나라의 양식 있는 시민들 눈에는 특권이 아닌 봉사정신으로 발판이 아닌 전심전력해야 할 목민의 제도일 뿐이다. 따뜻한 마음으로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나서야 하는 지위였던 것이다. 두 번째로 내걸었던 무사(無私) 역시 필요불가결한 덕목이다. 당리당략, 자파이기주의, 여기서 밀리면 내년의 선거가 어려워진다는 주판알을 굴리면서 총출동하여 유권자를 그들의 기득권 보호 앞잡이쯤으로 여기는 작태는 이제 끝장내야 하지 않을까. 세 번째가 시심(詩心)이었다. 시심은 한마디로 여유다. 인간의 기량이 여유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돈과 권세의 여유가 아니라 정신적 여유다. 여유가 있어야 기량이 커지고 크면 클수록 이상한 타산이나 변명이 없어지고 당당해진다. 정치이론이나 사상 같은 일은 얼마든지 뛰어난 말솜씨로 해결할 수 있겠으나 여유는 그런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섯 말의 녹봉 때문에 향리의 일개 관리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면서 벼슬을 팽개치고 전원으로 돌아간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으니, 어찌 근심하여 홀로 슬퍼하지 않겠는가. 지난 일을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달으니 앞으로는 잘 할 수 있음을 알겠노라.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한 평가에서 “시민사회와 시민정치가 정치 행동주의를 통해 보수 세력을 준엄하게 심판한 동시에 정당정치의 진정한 혁신을 요구했다”는 대목은 이제 정치판에서 닳고 닳은 노회한 지도자들의 기득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정치지도자들의 우둔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흡하기 이를 데 없다.
시민운동과 시민정치는 이번에 정치권의 혁신과 세대교체를 요구했고 일정 부분 성공한 듯이 보이지만 앞으로 시민정치가 제도화되지 못한 채 열광과 환멸의 정치적 악순환을 되풀이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시민의 정치 IQ가 높아졌다는 그것만으로 향후 선택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킹메이커의 자리를 선거캠프에 몰려드는 선수들이 아니라 시민이 차지하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덕목을 더욱 냉정하게 따져야 하는 이유다.
2011년 11월 01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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