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하늘이 점지하신 아이’는…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1.10.18)
나채훈의 중국산책 /
‘하늘이 점지하신 아이’는…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사극(史劇)을 즐기는 심리에서 시대의 흐름을 헤아린다면 ‘왜 위기인지 모르는 것이 진짜 위기’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국가적 리더십이 ‘감흥(感興)’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때가 되면 그 의미는 한층 더 심각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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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정당의 위기라는 말이 요즘 우리 주변에서 간단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는데 이는 정치권이 자기성찰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나타난 안철수·박원순의 바람 때문이었다. 바람이 불면 엉성하게 덮었던 가리개는 날아가 버리고 실체가 드러난다. 이 나라 정치 세력의 빈약한 쇄신 열정, 퇴색해버린 미래에 대한 비장감, 불분명한 자기정체성, 그리고 몰이해에 가까운 역사인식으로 오로지 대세론이나 연합승부론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있는 본 모습이 시민의 눈에 뻔히 보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적 리더십의 변혁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중국의 ‘사극열풍(史劇熱風)’은 권력 구조의 앞날을 풍자하는 이상으로 국민에게 어떤 정치적 판단력을 제공하고 리더십에 감흥을 주는지 눈여겨 볼만하다. 예를 들어 문화혁명으로 정국이 어수선할 때 명(明)의 충신 이야기인 사극 「해서파관(海瑞罷官)」이 붐을 이루었고, 천안문사태 후 덩샤오핑의 노환이 깊어졌을 때 나타난 사극 「천적교아(天的驕兒)」 같은 경우다.
이 연극은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曹操)가 권력을 승계할 때의 모습에 빗대어 덩샤오핑 사후의 권력을 풍자한 것으로 중국인들에게 흥미 이상의 자극을 주었다. 위왕(魏王) 조조는 자기가 후한 조정을 뒤엎고 천하통일의 위업을 이룰 의사는 없었고, 장차 후계자에 의해 그 대업을 이루고자 했다. 그에게는 네 명의 적자가 있었으나, 천성적으로 냉철한 권력의지를 가진 큰아들 조비와 정서적으로 풍부하고 활달한 기질의 시인 조식으로 후보를 압축했다. 그러고 나서 장차 후계자에 의한 천하통일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유능한 대신 순욱(荀彧)을 견제하여 죽게 만들고, 조비와 조식, 두 아들을 상대로 테스트를 실시했다. 결국 대업을 이룰 적격자는 냉철한 조비 쪽으로 결정되었다.
여기까지 전개는 조조와 덩샤오핑이 다르지 않았다. 곧 천적교아(하늘이 점지하신 아이)에 해당하는 인물은 장쩌민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달랐다. 조비는 동생인 조창과 조호를 죽이거나 죽게 만들었고, 저 유명한 칠보시(七步詩)에서 보이는 것처럼 조식마저 겁박하여 죽이려 했다. 자신의 권력에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친형제라도 아예 거세해버린 것이다. 조식은 거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방탕한 생활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장쩌민은 조비와 달랐다. 그는 당내의 세 파벌인 태자당·상하이방·공청단을 추스르고 권력을 나누어주면서 개방의 가속화와 점진적인 사회적 민주주의를 펼쳐 안정을 이루고, 덩샤오핑이 차차기로 낙점한 공청단의 후진타오를 적절히 학습시켜 대권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그 후진타오는 한 단계 더 나아간 경제적 성취로 중국을 세계 대국의 반열에 올려 놓았고 다음 후계자로 태자당의 시진핑이 뒤를 잇는다는 사실이다.
사극 「천적교아」가 예방주사 역할을 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권력 구조가 외부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달리 내부적으로는 치열한 암투가 전개되어 결국 승자가 쟁취하는 건 불문가지. 따라서 사극 한 편으로 중국의 최고위 리더십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대중의 호기심에 불과할지 모르나 적어도 권력자나 권력 이동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대중을 의식하게 하는 효과는 분명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명박 대통령은 원전 수주, 4대강 사업, 자원외교나 하겠다는 투로 대통령 자리를 거의 맹물로 만들고 말았다. 더구나 그런 가운데 여·야 모두 가치집단, 동지적 결사체이기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대세론의 선두주자는 ‘나한테 말시키지 말라’는 식으로 이슈를 피해가고, 연합우승론에 매달리는 야권의 미덥지 못한 자기들만의 치고받기는 계속하고 있어 국민들에게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에 비해 중국 공산당의 리더십은 확고하여 최근에는 자본가를 공산당원으로 받아들이는 파격을 서슴지 않는다. 인사 발탁 시스템도 치밀하고 구미에서 공부한 경제통 중견 당원들도 수두룩하다. 국민의 ‘아픔과 감흥’을 정책에 반영하는 시스템조차 우리보다 앞서고 있다.
2011년 10월 18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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