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지역은행(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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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1. 9.28)
지역은행
/( 781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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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2월1일 연두교서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유동적이고 잠재적인 지역자금을 집대성해 지역사회의 개발과 중소기업의 육성을 꾀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따라 인천상공회의소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같은 달 22일 '인천지방은행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자본금 1억5천만 원을 확보하기 위해 거시적인 주식 공모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주식 공모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1969년까지 더 기다려야 했다.
제1차 발기인총회는 그해 7월22일에 열렸다. 총회는 은행 이름을 '경기은행'으로 정하는 한편 영업구역을 경기도 전역으로 하고 27일 은행감독원에 설립인가 신청서를 냈으나 금통위의 상정은 지연이 되고 있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뜻밖에 수원에서 극비리에 제출한 인가신청서와 경합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인천쪽에서는 은행감독원이 제시한 대로 상호를 '인천은행'으로 축소시킨다는 조건 아래 은행을 출범시켰다.
1969년 12월8일의 일이었다. '인천은행'은 '내 고장의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시민의 금고를 자임'하며 키네마극장(현 외환은행 자리)에서 개점식을 갖고 이어 사동 본점 금고의 테이프를 끊어 영업에 들어갔다.
3년 뒤인 1972년 6월1일 애초대로 상호를 '경기은행'으로 변경하고 영업구역도 확대했지만, 1998년6월 우여곡절 끝에 퇴출당하고 말았다. 그 이후 저축은행 등 지역 밀착형 금융기관들이 나름대로 소임을 다해 왔지만, 그 한계 또한 노증된 상태다.
최소한 '자금의 선순환'을 위해서도 지역은행의 설립을 재추진할 시기가 됐다고 본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9월 2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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