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지도자에게도 ‘운(運)’이 필요하다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1.10.11)
나채훈의 중국산책 /
지도자에게도 ‘운(運)’이 필요하다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사람을 판단하는 밝음’의 첫 자리는 아무래도 인상이다. ‘인상을 본다’거나 ‘첫인상이 좋다’고 할 때 무엇보다도 기분 좋게 느껴지는 복상(福相)이냐, 아니며 불쾌하게 보이는 흉상(凶相)이냐에 있을 터이다. 지위나 학벌, 재산에 있어 별 것 없는 서생이라 할지라도 복상으로 판단되면 그에게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 중국인의 오랜 습성이었다. 반대로 아무리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고, 능력이 출중해도 흉상으로 판단되면 경원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와신상담의 고사에 나오는 월나라 재상 범려는 월왕 구천이 ‘장경오훼(長頸烏喙 : 목이 길고 입술이 툭 튀어나왔다)라는 이유로 나라를 반씩 나누어 다스리자는 제의까지 뿌리치고 멀리 달아난다. 인상이 나쁜 데다 시기심이 왕성한 흉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고구려를 침공한 당의 총사령관 이세적은 장교(군교)를 뽑을 때 오로지 인상을 잣대로 삼았다. 주위의 참모들이 의아하게 여겨 물었다.
“수십, 수백의 부하를 지휘하는 군교가 되려면 마땅히 말 타는 솜씨도 있어야겠고, 기본적인 창술의 재능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얼굴 한 번 보시고 몇 마디 말로 고르십니까?”
이세적이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복상이 중요하다. 운이 따를 테니 말이다. 그리고 목소리만 우렁차면 훌륭한 군교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솜씨가 좋고 뛰어난 녀석이라 할지라도 곧 죽어버릴 운을 가져서야 싸움터에 나가 뭘 하겠느냐.”
이렇게 말하고 나서 덧붙였다. “사람이란 마주보며 한마디 나누는 가운데 이 정도라면 인물됨이 되었다든가, 아무래도 경박하다는 느낌이 들어온다. 됨됨이가 될 인물에게서는 한 마디 말이라도 맛이 있고, 반대로 틀려먹은 인간에게서는 수백 마디 말을 들어도 시들해진다. 부끄러움도 체면도 모르고 우쭐거리는 녀석들, 부하들의 고통을 보고 괴로워할 줄 모르는 녀석들이 과연 지휘관이 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세적은 나중 측천무후의 황후 책립이 현안으로 떠올랐을 때도 주위와 다른 말을 했다. “세상이 모두 갑론을박하면서 들떠 환호하고 열광하거나 소란하게 다툴 때, 그들과 달리 냉정해지는 사람이 하나쯤은 조정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황후 문제는 황실의 사적인 일일 뿐이다”
요즘 일본의 새 총리가 된 노다가 마쓰시다 정경숙(松下政經塾) 출신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교육기관의 창립자는 ‘경영의 신’이라고 불린 세계적 기업가 마쓰시다. 재미있는 사실은 사재(私財)를 털어 장래 일본을 이끌 지도자를 양성하겠다며 문을 연 이 학교의 입학생 선발에서 마쓰시다가 취한 방법이다.
- 운(運)과 애교(愛嬌)로 뽑았다.
학벌이나 성적표, 가문 같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었고 서류 시험조차 없었다. 오로지 면접을 보고 골랐던 것이다. 마쓰시다는 어릴 때 부모가 사망했고, 그 때문에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더구나 태어날 때부터 신체가 허약하여 건강으로 고생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마쓰시다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면서 세계적 기업가로 성공했다. 일본과 같은 사회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그가 기득권의 완강한 벽을 뚫고 성공하기까지 나름대로 터득한 인생의 원칙이랄까, 삶의 방식이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아마 지위나 학벌, 재산 같은 것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사람 됨됨이가 시원찮으면 결과는 참담하고, 반대로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사람됨에 따라 얼마든지 미래를 빛나게 개척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됨됨이에 대한 마쓰시다의 직감력을 그는 ‘운과 애교’라는 방식으로 설명한 것이리라. 사실 운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으려니와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쉬울 리 없다. 관상쟁이를 곁에 두고 조언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나 마쓰시다 정도의 거물이 그런 방법에 의존하기보다는 본인 스스로 터득한 직감력이라든지 몇 마디 대화를 해보고 나서 인간됨이 쓸 만한 인물인지를 분별했을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아무리 갖춘 것이 많을지라도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하고 마쓰시다가 고른 노다. 그가 총리로서 대지진 이후 불어 닥친 일본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갈지 눈여겨보는 것도 흥미 있는 리더십이 아닐까 싶다.
2011년 10월 11일 (화)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