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가을 속으로…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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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10.20)
원현린 칼럼 /
가을 속으로…
산에는 단풍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등산객은 앞 다투어 산을 오르고 있다.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 했다. 들녘에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봄이 논밭에 씨 뿌리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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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산홍엽(滿山紅葉), 깊어가는 가을날에 명상의 숲으로 들어가 마음을 다잡아 보는 것도 심신수련이 될 듯하다.
독일 하이델베르그에 가면 그다지 높지 않은 산허리에 헤겔이 사색에 잠겼고 막스 베버가 걸었을 ‘철학자의 길’이 있다. 숱한 철인들과 시인들이 걸으며 명상에 잠기곤 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연인과 함께 이 길을 걸으면서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한다. 연전에 필자가 독일에 다녀온 시기도 지금 우리나라처럼 이 도시 전체가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어 있을 때였다.
언젠가부터 다시 걷고 싶은 철학자의 길이다. 하지만 이제 굳이 그 먼 나라에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에도 얼마든지 산책길이 있다. 요즘에는 지자체마다 다투어 둘레길이니 나들길이니 올레길이니 하여 산길을 내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가 걷고 오를 수 있다. 가까이는 강화 나들길이 있고 북한산 둘레길이 있다. 나들이 나가면 나들길이고 둘러보면 둘레길이다. 사색에 잠겨 산을 걷고 오르면 누구나 철학자가 되고 시인이 된다. 내가 걷는 길이 곧 철학자의 길이고 명상의 숲길이다.
산속에 들면 누구나 호수 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자연 속에 살아간 헨리 데이빗 소로우처럼 ‘윌든’ 숲 이야기를 쓸 수도 있다. 1천만 등산객 시대다. 건강을 위하여 좋은 현상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보아도 우리나라처럼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들이 수놓듯이 점점이 들어선 나라도 드물다.
지금쯤 인천 수도권 매립지에 가보면 한 시인의 표현대로 소쩍새와 천둥이 그토록 울고울어 피워낸 국화꽃이 만발해 있다. 바쁜 일상이지만 한번쯤 누렇게 곡식이 익어가는 가을 들판과 단풍나무 붉게 물든 산에 올라 가을 정취를 맘껏 느껴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은 가을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생활이 곤궁했던 두보(杜甫)는 “옥 같은 이슬 맞아 단풍나무 숲 시들고, 무산의 무협에는 가을 기운 쓸쓸하다. 강 물결은 하늘로 솟구치고, 변방의 바람과 구름은 땅을 덮어 음산하다. 국화 떨기 두 차례 피어나니 지난날이 눈물겨워, 외로운 배는 고향 생각에 묶여있다.”하며 쓸쓸히 가을을 노래했다.
천하를 다 가졌던 한(漢)무제(武帝) 유철(劉徹)도 “추풍(秋風)이 일고 백운(白雲)이 나니, 초목은 누렇게 시들어 떨어지고 기러기는 남쪽으로 돌아가도다. …퉁소소리와 북소리 울리고 뱃노래 부르니, 환락이 지극함에 슬픈 마음 많도다. 젊을 때가 얼마나 되는가? 늙음을 어이하리.”라는 추풍사(秋風辭)를 지어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했다.
하지만 우리는 농가월령가에서 “밤에는 방아 찧어 밥살을 장만할 때 / 찬 서리 긴긴 밤에 우는 아기 돌아볼까. / 타작 점심 차려 내니 황계 백주 없을 소냐. / 새우젓 계란찌게 벌어지게 차려 놓고, 배춧국 무나물에 고춧 잎 장아찌라. / 큰 가마로 지은 밥이 태반이나 모자란다. / 추수하여 흔할 때에 나그네도 대접하니 / 한동네 이웃하여 한들에 농사하니 / 수고도 나눠 하고 없는 것도 서로 도와 / 이때를 만났으니 즐기기도 같이 하세”하고 풍성한 가을 찬미했다.
가을은 앞날을 설계하기보다는 지나온 날을 되돌아 짚어보고 결산하는 계절이다. 주자(朱子)는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도 가벼이 여기지 마라. 연못가 봄풀의 꿈이 채 깨어나기도 전에, 뜰 앞의 오동나무 잎에는 벌써 가을 소리가 들리는구나.”라고 하여 젊은이들에게 시간을 아껴 공부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다음 달에는 수학능력시험일도 잡혀 있다. 수험생들은 말 그대로 촌음(寸陰)을 아껴 총정리에 매진할 때다. 이 열매의 계절 가을에 수험생 모두가 좋은 결실 거두기 바란다.
/주필
2011년 10월 20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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