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72년을 사진과 놀다'(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1.10.12)
'72년을 사진과 놀다'
/( 786 ) 조우성의 미추홀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인천은 사진예술과 인연이 깊다. 개항장이었던 역사적 배경에서 맺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만 해도 국가의 중요 시각자료는 화원의 손에 의해 제작됐다. 임금이나 공신의 초상화, 의궤 등을 남겼던 것이 그 예다.
그같은 양상은 사진이 도입되기 전까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개항 직후 인천, 부산 등지에서 민중의 삶을 화폭에 담았던 풍속화가 김준근도 그런 일을 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 상해서 사진을 배워온 이가 있었다.
평론가 이구열 선생에 의하면 1880년대에 활동한 황철(黃鐵)은 지운영, 김규진보다 먼저 중국인을 통해 사진을 익혔다. 그가 촬영한 인천 사진을 필자가 후손 황대용 옹(부평 거주)에게서 받아 본보에 소개한 일도 있다.
그렇듯, 인천은 전국 어느 도시보다도 먼저 사진에 눈을 뜬 지역이어서 광복 후 사진동호회 '은영회(銀影會)'까지 맥을 이어갔던 것이다. '인천사진문화사'(작가 이종화 지음)가 한 권의 책으로 나올 만큼 연조가 깊다.
원로 사진작가 김석배 옹도 인천서 사진을 시작한 분이다. 1939년 동산고(東山高)의 전신인 인천상업전수학교에 재학 중 처음 카메라를 잡았고, 1947년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국내 최초의 컬러사진을 촬영했다고 한다.
6·25전쟁 후 부산, 서울 등지에서 살다가 1993년 마음의 고향인 인천에 재정착해 노익장을 과시하며 이번 전시회 '72년을 사진과 놀다'(한중문화회관)를 마련했다. 지역 문화예술계 사상 처음인 87세 노 작가의 귀한 전시회다. 평생 아마추어를 자처해 왔지만, 한국 최초의 패션쇼 촬영 등 프로의 경지에 선 현장성, 기록성에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10월 12일 (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