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인천부자·부자인천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1. 9. 5)
인천부자·부자인천
/(772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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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부자'는 누구일까? 옛 문헌을 찾아봐도 과문한 탓인지 기록에 오른 '장자(長者)'는 눈에 띠지 않는다. 반면에 인천부사(仁川府使·지금의 시장 격)들 중에는 오리부자(汚吏富者)가 많았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조에 등장하는 부사 김찬선(金贊先) 같은 이는 전시에도 재산을 긁어모으느라 가렴주구를 일삼아 사간원에서 그의 파직을 요청할 정도였다. 부자가 있었다면 수탈을 자행했던 부사 정도였던 것이다.
개항 후에도 부자 얘기는 흔적이 없다. 일제강점기에 들어 포목점 등으로 큰돈을 벌어 조선물산장려운동에 나섰던 이규옥(李珪玉)과 정미소 등을 운영하면서 '거지잔치'를 벌였던 유군성(劉君星) 등이 회자될 뿐이다.
오늘의 기준으로 본다면, 광복 후의 '인천부자'는 인천의 하늘과 땅과 바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서 줄곧 부를 축적해 온 한진(韓進)과 현대제철(現代製鐵), 동양화학(東洋化學) 등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을 듯싶다.
그러나 그들 '부자'들이 지난 세월 지역사회에 감동을 준 일이 있었는가 돌아켜 보면 기억에 남는 장면은 거의 없다.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돈을 번 이들은 있어도, '인천의 빌게이츠' 같은 '장자'는 없었던 것이다.
더불어 빚더미에 올라앉아 노심초사, 곤욕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 인천시민들의 작금의 심사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 속도 모르고 인천을 '부자인천'이라 했다니 어리둥절하다. "부자이시니, 아시안게임도 당신들끼리 하시라"는 말처럼도 들렸다. '부자'들은 죄다 고향을 외면하고 대통령은 '부자인천'이라니 이런 속 빈 강정이 따로 없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9월 05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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