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다시 만나는 극작가 함세덕(32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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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1. 9. 2)
다시 만나는 극작가 함세덕
▧ 글로벌 i ▧
고동희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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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회에 나서는 날부터 습작기를 거치고, 작품을 쓰고, 연극을 만들고, 짧은 인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고난의 세월과 고달픈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우리 예술사에 주옥같은 작품을 남겨 놓았고, 우리 연극사에 최고의 극작가로 널리 평가되고 있다. (중략) 서정적 리얼리즘과 신선한 언어감각, 그리고 연극성이 충만한 기교와 구조로 인하여 그의 탁월하고 견실한 극작가적 위상을 빛내 주는 작품들이다. 그야말로 우리의 대표적인 서정적 리얼리스트였다고 할 수 있다."
극작가 함세덕에 대한 연극평론가인 서연호 고려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인천이 낳은 위대한 극작가 함세덕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인천연극협회가 함세덕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함세덕 희곡상'등의 기념사업을 벌여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참 반가운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다.
1915년 인천에서 출생한 함세덕은 불과 서른다섯 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지만 한국 근대연극사에서 뚜렷한 족적으로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이다. 함세덕은 1930년대 수준 높은 예술성을 지닌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한 당대 최고의 작가였다. 인천과 인천앞바다, 그리고 인천의 도서지역을 배경으로 삼아 짙은 향토애를 탁월한 언어로 작품 속에 담아냈으며, 인천연극의 중심적인 활동을 벌였다.
해안의 어촌을 배경으로 한 <산 허구리>, 팔미도를 배경으로 삼은 <해연>, 무의도가 배경이 된 <무의도 기행> 등은 바다를 안고 사는 주민들의 삶을 밀도 있게 그려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지금은 거의 사라진 인천과 인근 도서지역의 토박이말들이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문학사적 의미가 한층 높다. 아울러 그의 대표작인 <동승>, <낙화암> 등은 연극적 기법에서도 탁월한 구조를 지닌 수작으로 꼽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과 연극 활동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왔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기의 시대적인 혼란을 겪은 탓에 극작가 함세덕과 그의 작품이 갖는 연극사적, 혹은 희곡사적인 가치를 확인하기도 전에 일제치하의 공연활동과 월북한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아 그것이 그의 전부인양 논외로 치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극작가 함세덕이 이루어낸 귀중한 연극적 업적이 버려져서는 안 될 일이다.
간간이 그의 작품들이 무대에 오르긴 했지만 함세덕이라는 이름으로 일반 관객들의 눈길을 끌기란 쉽지 않다. 가볍고 재미있는 공연이 대세를 이루는 현실에서 그의 연극사적 가치를 확인하는 일을 민간 극단이나 개인의 영역으로 미루어서는 곤란하다. 인천연극협회가 함세덕을 다시 주목하겠다고 나선 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이참에 함세덕을 다시 만나는 일에 많은 이들이 함께 나섰으면 하는 마음이다.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의 협조와 지원 또한 절실하다.
더불어 이번에야말로 인천연극협회가 구체적인 대안을 세우고 이를 꼭 실행에 옮겨주길 바란다. 이미 몇 해 전에도 극작가 함세덕과 관련된 사업을 벌이다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안타까운 경험이 있다. 그 까닭에는 굵직한 사업들을 적은 예산으로 치르려다 보니 사업의 규모와 비용이 적정하게 산정되지 못한 탓이 크다. 많은 사업을 한꺼번에 하기보다는 사업의 단계를 정하여 차근차근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오늘의 인천 연극이 나름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데에는 인천에서 활동하는 극작가의 부재가 우선으로 꼽힌다. 지역 연극인들은 함세덕과 견줄만한 극작가가 인천에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자주 토로하곤 하는데, 이번에 준비하는 사업들이 그런 갈망에 답을 보여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다시 만나는 극작가 함세덕. 그가 인천을 품에 안고 사랑한 것처럼 인천이 그를 사랑한다면, 아니 제대로 기억해주기만 한다면 인천은 위대한 예술가와 또 하나의 예술을 지니는 셈이다. 아울러 인천의 자랑거리를 내어놓는 일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2011년 09월 0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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