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단추는 달아주되 손수건은 안 된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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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7.29)
나채훈의 중국산책 /
단추는 달아주되 손수건은 안 된다
권재진 법무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대통령 비서관이 국무위원이 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비서는 영어로 <secretary>, 이는 비밀을 취급하는 사람이란 의미인데 미국의 국무장관은 <secretary of state>다. 국무장관이 비서 일을 하는 건 아닌 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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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비서 규정을 보면 ‘심리연구가, 외교관, 정치인, 조사전문가, 기억력이 비상한 인물, 문필가, 법률관계자, 금융상담자, 사무정리자 등 이런 자격을 몇 가지 또는 일부분을 가진 자라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런 규정을 헤아려 보면 백악관 비서진용은 상당한 수준의 전문직 식견을 가진 유능한 인물 가운데서 발탁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청와대의 경우도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미국보다 권력 집중도가 더한 만큼 자기억제력(self control), 자신감(self confidence), 자기집중(self concentration)의 비서 조건을 더 많이 갖춘 인물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 나오는 걸 보면 앞서 말한 세 조건에 이상이 있다는 건데 아무래도 완벽한 비서로 꼽히는 <석가모니의 아난> 이야기를 한번 음미해볼만하지 않을까.
불가의 교단이 나날이 커지고 제자가 많아지면서 젊었던 석가모니의 머리도 어느새 희끗희끗해졌다. 그런 어느 날 석가모니는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사리불같이 덕이 높은 제자들에게 초로(初老)의 심경을 털어 놓았다. “제자들아, 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 그런지 주변 일을 챙겨주고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대신 해줄 사람이 하나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존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시봉 겸 비서가 필요하다는 건가요?” “그렇다. 교단 일은 너희들이 한다 해도 내 신변에 잡다한 사무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 제가…하고 여러 제자들이 나서자 석가모니는 “너희들도 나처럼 나이가 들지 않았느냐? 너희들에게도 시봉해줄 사람을 구해주고 싶을 정도이거늘…하고 빙긋이 웃었다.
“석존의 뜻을 알겠습니다” 하고 제자들이 의논을 한 결과 아난이라는 젊은이를 추천했다. 석가모니를 곁에서 모시는 영광스런 일을 맡게 된 아난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부러워했다. 정작 아난은 사양했다. “저는 아직 수양이 부족합니다. 자칫 석존과 여러 선배님들에게 누를 끼칠까 두렵기만 합니다.” 아난은 진심으로 물러섰으나 주위에서 계속 설득하자 “그럼 한번 해보겠습니다. 단 세 가지 조건을 말씀드릴 테니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했다.
아난이 내놓은 첫째 조건은 ‘어떤 제자이건 석존의 옷을 물려받지 말 일’, 둘째 조건은 ‘석존이 초대를 받아 신도들의 집을 방문할 때 동참해서 함께 식사를 들지 말 일’, 셋째 조건은 ‘때가 아닌데 석존을 찾아 뵙고 시중들지 말 일’이었다.
이를 전해들은 석가모니는 “과연 아난은 좋은 녀석이다. 그가 내놓은 첫 조건은 다른 제자들보다 자신이 더 혜택을 받는 걸 경계하기 위함이며 두 번째는 스스로 과오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자숙을 뜻하며, 셋째는 다른 사람의 흠결을 고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다. 그 녀석은 교단의 공적인 일에 대해 이렇쿵 저렇쿵 하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세 조건을 내건 것이니 모두들 그렇게 하라” 고 분부했다. 이후 아난은 석가모니 곁에서 25년간 시봉하면서 다른 제자에게 교만하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남의 험담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이득을 한 가지도 챙기지 않으며 훌륭하게 소임을 다했다.
오늘의 정치 구조에서 대통령 비서관이 아난처럼 행하기는 쉽지 않을 테지만 마땅히 숙고해볼 만한 사례다. 흔히 말하는 단추와 손수건의 차이점을 비서로서 새겼으면 싶은 것이다. 윗사람이 ‘양복의 단추를 달아 달라’고 하면 해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나 ‘손수건이 더럽혀졌다. 빨아 달라’고 하면 거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두 가지 일이 별 차이가 없는 일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단추가 뜻하는 바는 시급한 현실문제의 보좌인 반면, 손수건은 아내가 해주는 극히 사사로운 일이자 굳이 의미를 두면 아첨이고 절도(節度)를 잃은 행위라는 말이다. 공사(公私) 구분의 경계로 삼아 보았으면 한다.
나채훈(중국역사문화연구소장)
2011년 07월 29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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