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촌은(村隱) 선생(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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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1. 8. 1)
촌은(村隱) 선생
/( 748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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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웅 전 인천고 야구부 감독은 '한국야구 100년을 빛낸 10명'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 야구계의 대부였다. 인상(仁商) 시절 일본 갑자원대회에 출전했던 명성과 함께 제자와 야구사랑이 생애의 전부였다고 회자된다.
그의 제자로서 전쟁 직후 마운드를 지켰던 김재은(金在銀) 선생은 "점심을 굶고 연습하러 나오는 선수들이 많았는데 '운동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며 수시로 선수들에게 '꿀꿀이죽'을 사주셨다"고 스승을 회고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절, 인천고 야구부는 제33회 전국체육대회 우승을 기점으로 맹위를 떨쳐 쌍용기, 청룡기(2연승), 황금사자기 등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석권하면서 인천이 한용단의 전통을 이어온 구도(球都)임을 내외에 과시했다.
'그 스승에 그 제자'였다. 선수생활을 마치고 출판업에 뛰어든 김재은 선생의 모교와 야구사랑도 귀감이었다. 고희연 때 자식들이 마련해 준 해외여행비 5백만원을 고스란히 야구발전 기금으로 내놓았던 선생이셨다.
그런가 하면 지역발전과 열악한 출판문화를 일으켜 세우자며 부인 유조파 여사와 함께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털어 잡지 '월간 인천'을 발행했던 일은 두고두고 지역사회가 간직하고, 기려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서예가로서 일가를 이루신 인간승리와 미협 지부장으로서 헌신했던 일도 길이 기억되었으면 한다. 6척의 장신이시나, 늘 허리를 굽히시며 온화한 미소로서 겸손과 사랑을 일깨워주셨던 촌은(村隱) 김재은 선생! 향년 81세로 영면하셨다는 부음이다. 선생이 계셔 후학들이 행복했었다는 말씀을 고합니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8월 01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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