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모리'의 후예들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1. 8.10)
'모리'의 후예들
/( 752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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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초, 라디오 청취는 가정오락의 대명사였다. 온 가족이 라면상자보다 더 큰 진공관 라디오 앞에 앉아 드라마를 듣는 게 큰 낙이었다. 그 중 서울중앙방송국의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지금도 생생하다.
한국인 학도병 '아로운'과 일본여인 '히데코'와의 사랑을 다룬 얘기인데, '그것이 거의 다 자전적 체험기였다'고 방송대본을 쓴 작가 한운사(韓雲史) 선생이 모 지에 밝힌 바 있다. 선생이 곧 '아로운'이었던 것이다.
"내무반에서 밤마다 내 뺨을 때리는, '모리' 일등병이라는 놈팽이가 있었다. 일본의 군대조직에서 제일가는 특징은 밥그릇 수를 따지는 거다. 즉, 얼마나 먼저 들어왔느냐에 따라 선후배를 가리는 질서의식이었다."
'아로운'은 일본 나고야지방 제13부대 자동차병과의 초년병이다. '조센징'이었기에 밤마다 참기 어려운 모멸과 기합을 받는다. 소년시절 방송을 즐겨 듣던 필자는 자연히 '일본 제국주의와 그 군대'를 혐오했었다.
그로부터 10년후인 1970년 1월, 졸업식도 못한 채 필자는 군대에 나갔다. 논산 제29연대에서 훈련을 받고 전남 광주의 모 사단으로 배속받아 갔는데, 거기에는 아직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내무반장인 하사의 '군기가 빠졌다'는 말 한마디에 따라 대졸이나 재학 중이던 사병들은 허구헌 날 구타와 고통스러운 기합을 받았다. 그리고 38년이 지난 오늘이다. 그런데도 그같은 악몽이 군에서 재연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잔재조차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네 주제가 한심하고 또한 창피하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8월 1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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