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재인(才人)이냐, 덕인(德人)이냐(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1. 8.12)
나채훈의 중국산책 /
재인(才人)이냐, 덕인(德人)이냐
아무리 머리가 잘 돌아가고,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높은 지위(地位)를 주어 다스리는 일을 하게 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는 걸 깨우친 명치유신의 사이고는 그의 유훈에서 ‘공로가 있는 자에게는 상(賞)으로 돈이나 물건을 주어라. 공로가 있다고 해서 놓은 자리를 주어서는 안 된다. 높은 자리를 주려면 스스로 그 지위에 합당한 견식이 있어야 한다. 공로가 있다고 견식이 부족한 자에게 높은 자리를 주게 되면 나라가 흔들리는 원인이 된다’고 단단히 일러두고 세상을 떠났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이를 실천한 사람이 평민 출신 총리대신으로 명성을 누린 하라 다카시(原敬). 그는 오랜 참모로 공로가 많은 측근 무토 카나요시를 각료 임명 때마다 제쳐 두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무토는 드디어 참지 못해서 “선생님, 저도 이제까지 무던히 졸병생활을 했습니다. 이제 장관 자리 하나 쯤은 제게 주어도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항의 겸 인사 청탁을 했다. 하라는 정색을 하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무토. 너는 재능도 있고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공로가 많았다.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지만 대신(장관) 자리만은 안 된다. 대신이란 뚜렷한 재능이 없더라도 그 자리에 앉혀 놓으면 자연스럽게 그 부서가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그만한 자격이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인용한 대목이 중국사상 최고의 막빈(재야에 있는 임금의 스승)으로 꼽히는 이극(李克)과 춘추시대 위(魏)문후 사이에 있던 대화다.
하루는 위문후가 이극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일찍이 ‘집안이 궁핍할 때는 착실한 아내를 생각하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훌륭한 재상을 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바야흐로 어지럽습니다. 훌륭한 재상을 물색하다 보니 위성(魏成)과 적황(翟璜) 두 사람으로 정해졌는데 어느 쪽을 택할지 가르침을 주십시오.”
일국의 재상을 결정하는 일이니 만큼 이극은 경솔히 대답할 수도 없는 일인데다 사실 적황과는 오랜 친분이 있었으므로 ‘제3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으니 군주께서 결정하시라’고 사양했다. 허나 위문후는 재삼 재사 하문했고 이극은 “정 그러시다면 재상의 조건 다섯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조건에 맞는 쪽을 재상으로 임명하시지요”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는 거시기소친(居視其所親 : 벼슬을 떠나 있을 때 어떤 인물과 교제했는지를 살펴본다). 재야 시절에 부질없는 친구들과 접촉하고 있었다면 그 인간이 조잡하다고 판단해도 좋고, 주변에 훌륭한 인물이 있었다면 1급의 인물이라 여겨도 좋을 것이다. ‘군자는 교유를 삼가서 한다’는 것이 소중하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부시기소여(富視其所與 : 큰 돈을 손에 쥐었을 때 무엇에 썼는지 본다). 그 돈으로 투기를 했다거나 사치향락에 사용했다면 재상의 자격이 없다. 경제(經濟)란 경세제민(經世濟民 :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제도한다)의 준말이다.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식견이 있어야 윗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달시기소거(達視其所擧 : 고위직에 올랐을 때 어떤 인물을 천거했는지를 살펴본다). 사람을 볼 줄 아는 총명이 없으면 단 하루도 재상의 임무를 감당할 수가 없다. 자격이 없는 자를 사적인 친소관계에 의지하여 천거하고 발탁하는 정도라면 덕망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넷째는 궁시기소불위(窮視其所不爲 :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무엇을 했는지를 살펴본다). 인생에는 갠 날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다.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기가 꺾이지 않고, 잘 나갈 때 교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처지에서는 조용히 자신을 갈고 닦는 자세가 그의 인격 됨됨이가 제대로 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다섯째는 빈시기소불취(貧視其所不取 : 가난할지라도 소신대로 살았는지를 살펴본다). 안빈낙도(安貧樂道)라고 했다. 조잡한 인간은 궁핍해지면 큰일났다고 여겨 부정한 돈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주머니에 챙기려 든다. 이를 악물고 참느냐에 따라 인물의 갈림길이 된다는 말이다.
다섯 조건을 들은 위문후는 “이제 결심이 섰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며 생각난 이야기다.
나채훈(중국역사문화연구소장)
2011년 08월 12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