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공(公)과 사(私)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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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7.14)
원현린 칼럼 /
공(公)과 사(私)
지난 주 우리는 행복했다. 좀 지난 이야기지만 남아공 더반에서 날아온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이라는 낭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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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사이로 각 신문에 보도된 두 장의 사진은 우리를 기쁘게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쓰럽게 하기도 했다. 하나는 올림픽 유치 성공 일등공신 김연아가 기뻐 흘리는 눈물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휴! 힘들어~’ 하면서 김연아가 인천공항에 내려 더반에서의 그토록 당찼던 모습과는 달리 기진맥진 한 상태로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평창 올림픽 유치 팀 모두가 다 수고 했지만 누구보다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어야 할 김연아는 몸살감기로 인해 입국환영행사장에 참석하지 못했다. 당당히 이기고 돌아오는 개선 퀸의 모습을 보지 못해 국민 모두는 아쉬워했다.
그녀에 대한 호칭은 다양하다. 국보소녀, 국민공주, 피겨여왕 등등이 그녀를 따라다니는 애칭들이다.
한바탕 잔치가 끝나고 언론에는 또 다시 정치뉴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 정당의 대표 측근을 특정 자리에 앉히느니 마느니 하고 티격태격 다투는가하면 법무부 장관 내정을 둘러싸고 회전문 인사론이 또 다시 제기되는 등 여전히 구태가 재연되고 있는 정치권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향해 정치가 온통 선거정국으로 돌아선 느낌이다.
어디 이 뿐인가. 프로축구 등 건전해야 할 스포츠분야에서까지 승부조작이니 하고 온갖 비리가 횡행하고 있으며 금융 비리로 숱한 정관계 인사들이 사법처리 당하고 있는 것이 이 땅의 현주소다.
우리를 더욱 허탈하게 하는 것은 모 학교의 한 교장이 교사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해임됐다는 소식이다.
이 모든 것이 공인들이 신분을 망각하고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결과물들이다.
오죽하면 색목인들이 이러한 한국 사회를 보고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사람들’이라 했을까.
“피겨는 개인적인 사사(私事)요, 평창은 국가적인 국사(國事)였기에 나 하나 잘못되면 어쩌나하고 더 힘들었다.”고 말한 김연아였다. 온 힘을 쏟아 임무를 100% 완수하느라 온몸의 진이 다 빠진 것이다. 그래서 탈진했다.
이랬던 김연아가 귀국 후 또 다시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들어서는 우리의 이 같은 정치뉴스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고위직에 오를수록 사리분별력을 잃는 것이 우리나라 공직자들이 아닌가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허구한 날 공직자 부정비리가 뉴스의 중심에 설 수 있을까.
알만한 인사들인데도 특정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하나같이 무엇이 옳고 그르고, 무엇이 곧고 굽고, 무엇이 선하고 악한 것인가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까닭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김연아가 뚜렷이 공과 사를 구분지어 한 이 한 마디야말로 말 그대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이요 정문일침(頂門一鍼), 바로 그것이었다. 이 보다 더 간단명료한 공과 사에 대한 설명이 필요 있을까.
공직자들은 진정 공과 사가 무엇인지 김연아에게서 배워야 하겠다. 피겨대회인들 왜 공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국가의 명예가 걸린 공사(公事) 중의 공사, 국사다. 피겨 올림픽도 그 만큼 무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연아는 국가로부터 막중국사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임무를 명(命) 받았기에 이를 중대히 여겼던 것이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에 대한 변별력 상실은 곧 부정부패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언제나 참담하다. 역사상 수많은 민족이 나라를 세웠다가 조정의 부패로 힘을 잃어 망하곤 했던 것을 지나간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김연아처럼 혼신을 다해 국사를 수행하는 공직자가 과연 이 나라에 그 몇이나 될까.
2011년 07월 14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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