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인구문제(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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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1. 8. 5)
인구문제
/( 750 )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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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제물포는 개항장이었다. 우리나라 인구의 대부분이 농사를 지어 겨우겨우 호구지책을 하고 있을 때, 인천엔 별별 신종직업이 다 생겼다. 부두 목도꾼, 정미소 선미공, 미두취인소 사환, 여관 종업원 등이 그들이었다.
"인천엘 가면 살 궁리가 있다"는 인식이 조선팔도에 퍼진 것은 그때부터였고, 그들을 더욱 고무시킨 것은 외지인을 배척하는 지방색이 인천엔 없다는 소문이었다. 와서 살다 보니 그게 사실이어서 '인천 러쉬'는 계속됐다.
광복 후인 1949년7월엔 이런 일도 있었다. 전북 이리(裡里)에서 실업자 21세대 1백여명이 인천으로 무작정 올라온 것이다. 인천시 사회과에서는 서둘러 지금의 중구 답동 공터에 천막을 쳐 주는 등 응급구호에 나섰다.
"현재 부내 거주자도 집이 없고, 일터가 없어 굶는 판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타 지방 실업자까지 와서 살게 해 달라고 애걸하여…" 시 당국자들을 난처하게 했었으나, 이듬해 터진 6·25전쟁 후엔 사정이 더 심각했다.
이북 피란민들의 정착과 충청도, 전라도 출신들의 이주가 줄을 이었다. 최근엔 사할린 동포, 탈북자, 조선족, 동남아 노동자가 어우러져 한국판 '인종의 도가니'를 연상케 하고 있는데 서울 이탈주민까지 유입돼 난감하다.
인천에 와 살겠다는 걸 마다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주 후 향우회에나 열을 올리니 마냥 반길 수만도 없다. 나날이 느는 인구의 뒤치다꺼리에 쫓기다 보니 정작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은 실종된지 오래다. '인구문제', 무슨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겠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8월 0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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