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간신 ‘진복창’과 4월 총선(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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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20. 3. 5)
간신 ‘진복창’과 4월 총선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여야 모두가 혁신을 내걸고 신진 인사 영입과 공천의 새바람을 운운하며 4월 총선의 기치를 내걸고 있다. 국민들은 ‘누가 누가 잘하나’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다. 명사출고도(名師出高徒)의 속담처럼 훌륭한 정치지도자 아래에서 빼어난 국회의원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요즘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의 주장이나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면 터럭을 불어서 숨겨진 흉터까지 모조리 들추어내는 ‘취모멱자(吹毛覓疵)’에 열을 쏟고 있다. 한마디로 ‘누가 누가 못하나’ 시합처럼 보인다. 위기와 갈등, 모략과 혐오, 어떻게든 상대를 끌어내림으로써 이익을 보려는 듯하다.
선거판이 깨끗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여야 모두 상대를 끌어내리고 아군이 올라서려 발버둥치는 건 나름 봐줄 만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누가 누가 못하나’만 찾아내려고 혈안이 돼 혼탁한 세상을 만든다면 21대 국회는 출범하기 전에 망가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율곡 이이가 7세 때 쓴 「진복창전」은 곱씹어 볼 만하다. 일곱 살 소년의 눈에 비친 진복창이란 인물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선 진복창은 조선 중종 때 장원급제하고 4년 후에는 일약 정4품에 해당하는 사헌부 장령에 올랐다. 감찰행정의 요직에 발탁된 것이다. 문무백관을 감찰해 공직 기강을 진작해 풍속을 바로잡고, 억울한 일을 없애도록 하면서 못된 짓을 금하는 중책을 맡았으나 그는 탐욕이 많았다.
중종이 죽고 인종에 이어 명종이 임금에 오르자 당시 외삼촌 윤원형이 권세를 휘둘렀다. 진복창은 재빨리 윤원형에게 들러붙어 사간원과 사헌부를 오가며 정적이나 외척의 득세를 못마땅해 하는 뛰어난 신하들을 가차 없이 내쫓거나 죽였다.
마침내 그는 대사간과 대사헌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배신도 밥 먹듯이 했다. 처음 자신을 사헌부 장령으로 천거했던 이조판서 허자를 제거하는 데 앞장섰고, 스승 구수담마저 모함해 죽였다.
윤원형의 견제 세력에 대한 그의 집요함은 많은 이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고 마침내 젊은 신하들을 중심으로 반(反) 진복창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다. 한데 명종은 "진복창이 강직한 성품으로 나라를 위하는 명신"이라고 감쌌다. 뭇사람들이 그에게 붙인 별명이 독사(毒蛇)였다.
마침내 그에게도 종말이 다가왔다. 뒤에서 응원하던 윤원형이 맘을 바꿔 삼수로 유배를 보냈고, 끝내 죽음을 당한 것이다. 실록은 그를 평해 "사람됨이 경망스럽고 사독(邪毒)하다"고 기록했다. 문제는 일곱 살 율곡이 「진복창전」을 쓴 때가 훗날이 아니고 진복창이 한창 위세를 떨치던 중종37년이었다는 사실이다.
중종 30년에 문과의 장원급제, 34년에 정4품 사헌부 장령이 된 그를 일곱 살 율곡이 어떻게 알고 평전을 썼을까? 주변 어른들의 평판을 들었을 것이다. 결국 소년은 그런 인간이 되지 않겠다는 굳센 다짐으로 평전을 썼을 것임에 틀림없다.
‘누가 누가 잘하나’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해 전파를 타기 시작했고 텔레비전으로 옮겨가 1982년까지 방송됐다가 2005년부터 다시 방송되고 있는 장수 프로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상이한 점은 관객들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어린이의 자랑은 아무리 서툴고 과장돼도 사랑스럽다.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잘하는 것’을 찾아내려 하기 때문이다. ‘누가 누가 잘하나’라는 제목은 한 세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어색하지 않으려니와 앞으로도 받아들여질 것 같다.
그러나 오늘의 4월 총선판에서 유권자는 어른도 아니려니와 착한 심성으로 지켜보는 관객이 아니다. 깊숙이 감춰진 흠결이라도 하나 더 찾아내어 상대를 거꾸러뜨리는 모습에 환호작약(?)하는 성향이 날로 농후해지는 세태의 공범자들일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자유로운 비판은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으로 이것이 차단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금 취모멱자의 풍토는 진복창 같은 인물을 출세시키고 율곡 이이 같은 인물을 내팽개칠 위험이 다분하다. 깨어 있는 유권자 의식이 절실한 판에 사방을 둘러봐도 빛줄기는 가늘기만 하다.
20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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