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노출의 계절에 미녀의 조건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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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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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채훈의 중국산책/
노출의 계절에 미녀의 조건
나채훈(중국역사문화연구소장)
한대(漢代)의 시경 석인(碩人)편에 보면 반할만한 미녀의 조건으로 “살결은 희고 미끈하며, 치아는 박 속같고, 이마는 편편하게 넓어야 하며, 눈썹은 아미(蛾眉 : 누에나방의 촉수처럼 털이 짧고 초승달 모양으로 길게 굽은)이어야 하고, 웃으면 입 가장자리에 애교가 고이며, 눈매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얼굴 중심의 미적 기준을 제시한 것인데 중국은 물론 우리도 오랫동안 이에 익숙해져 왔다. 물론 몸매에 대한 기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상십삼구(女相十三具)」라 하여 “눈매는 길고, 콧날이 서야 하며, 살결이 촉촉하고, 어깨는 둥글며, 젖꼭지는 검고, 엉덩이가 크면서 둥글어야 한다”고 했다. 허나 중국 최고의 미녀 양귀비가 비만에 가까운 풍염한 육체파였고 초희는 오늘의 모델조차 울고 갈 정도로 세요(細腰)를 자랑했으니 육체의 볼륨은 그때 그때 달라졌다.
다만 미녀들의 신체 부위 노출은 시대에 상관없이 매우 엄격했다. 얼굴의 공공연한 노출조차도 미인은 물론이고 여염집 여인네까지 손가락질 받는 행위였다. 이른바 삼상(三上), 삼중(三中), 삼하(三下)다.
이에 관련된 웃지못할 일화가 전해온다. 조선시대 중국의 사신 대열이 풍악을 울리며 서울 거리를 지날 때였다. 한 양반집 부인 하나가 집안의 길가 담장에 붙은 누각 위에 올라가 발(簾)을 살짝 걷어 올리고 얼굴을 드러낸 채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이 모습을 본 중국 사신이 곁의 조선 관헌에게 은근한 어조로, “조선에 미인이 많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렇군요. 아마 내게 여복(女福)이 있을 모양입니다”고 했다. 조선 미녀와 객고(客苦)를 풀 수 있게 해달라는 암시였다.
이 일이 소문나 그 부인의 남편은 양반들 사이에서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의 놀림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삼상(三上)이란 말 위에 앉아 얼굴을 노출시킨 (馬上) 여인, 담장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墻上) 여인, 누각 위에서 얼굴을 노출시켜 내려다보고 있는 (樓上) 여인을 이르는데 남성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행위로 여겼다.
삼중(三中)은 여관에 들어가 있는 (旅中) 여인, 술에 취해 있는 (醉中) 여인, 햇빛 아래 얼굴을 노출하고 있는 (日中) 여인이니 남성이 엉큼한 생각만 품으면 관계가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삼하(三下)는 노골적인 유혹으로 여겼다. 달빛 아래 얼굴을 드러내고 거니는 (月下) 여인, 촛불 아래서 남자를 응시하는 (燭下) 여인, 걷어 올려진 발 아래 얼굴을 드러낸 (簾下) 여인이니 몸을 허락한다는 의사로 읽혀진 것이다.
따라서 중국 사신을 바라본 여인은 누상(樓上)과 염하(簾下)를 동시에 행했으니 다른 양반들로부터 ‘댁의 부인이 요즘 싱숭생숭한 나머지 외국 사신에게까지 묘한 행동을 했다’라는 해설(?)을 감수해야 했다.
이렇듯 얼굴 하나의 공공연한 노출이 여성들의 은근한 유혹 수단으로 인식된 것이 동양의 오랜 관습이었다. 그런데 요즘 은밀한 부분으로 여겨졌던 가슴이나 배꼽의 노출은 다반사이고 최근에는 엉덩이 바로 위까지 아슬아슬하게 깊숙이 패여 뽀얀 등을 모조리 드러낸 차림의 요염한 미녀들이 안방극장을 심심치 않게 장식하고 있어 남성들에게 ‘여복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지. 성(性)의 개방시대라고 하지만 눈요기치고는 과다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여상십상구」 후반에 보면 미인의 정신적인 조건이 몇 가지 제시되어 있다. 남의 다툼에 끼어들어 공연히 시비에 휘말리지 않는 자세, 어려움을 겪더라도 스스로 감내하지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자세, 조금 달콤한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혹(惑)하여 빠져들지 않는 자세, 사치스런 물건을 탐내거나 요구하지 않는 자세 등등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여 자신을 갈무리하고 쉽게 유혹당하지 않으며 재물 때문에 틈을 보이지 않아야 미인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오늘의 여성들에게 이런 미인의 조건을 들이대는 것은 만부당한 일이 분명할 것이나 노출이 필연적인 계절에 사회 도처에 있는 인간 말종같은 자들의 성폭력 위험에서 우리의 선량한 여성을 위한 고언(苦言)쯤으로 여겨 곱씹어 보았으면 싶다. 미인까지 노출에 용감해질 필요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2011년 06월 24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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