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희귀한 요리, 별 것 아닌 것 많다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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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6.10)
나채훈의 중국산책 /
희귀한 요리, 별 것 아닌 것 많다
별미요리란 대개가 고대 상류사회의 음식 사치에서 비롯된 것들인데 중국의 경우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역대 황제들이 누린 음식 사치는 다양한 면에서도 그렇지만 질(質)적인 면에서 따져볼 점이 많다. 오리구이 하나만 해도 통째로 쇠꽂이에 꿰어 불 위에 올려 돌려서 굽는 차소(叉燒), 달구어 놓은 아궁이의 열기로 굽는 민로(閔爐), 속살은 열탕으로 구어삼고, 외피는 불꽃에 굽는 괘로(掛爐) 등으로 별미를 맛보았다. 여황제 측천무후가 즐긴 오리통구이는 더 유별났다. 기둥서방 장역지(張易之)가 만들었는데 바닥이 철판으로 된 쇠그물통(鐵籠)에다 홈통을 설치하고 산 오리를 가둔 후에 숯불 위에다 놓고 천천히 가열하는 방식을 썼다. 이때 홈통으로 각종 양념을 흘리면 뜨거움과 갈증을 못 이긴 오리는 양념을 먹거나 몸에다 묻혀가며 발버둥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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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양념이 골고루 배고 기름기가 쏙 빠진 오리통구이가 만들어졌다. 참으로 잔인한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거위 발바닥 요리도 이에 못지않았다. 오리통구이를 하는 그 쇠그물통 속에다 살찐 거위를 넣고 숯불을 좀 더 빨리 뜨겁게 하는데 이때 발바닥이 견딜 수 없게 뜨거워진 거위는 격렬히 퍼덕거리며 뛰어 오르다가 마침내 죽게 된다. 그 사이에 온 몸의 기름이 발바닥으로 모여 살이 두꺼워지면서 고소하게 잘 익는다는 것이다. 이런 거위 발바닥 요리 한 접시를 만들기 위해 수십 마리의 거위를 같은 방식으로 고문하듯이 잡았다. 이렇게 특정 부위를 인공적으로나 자연적으로 기(氣)를 집중시키면 맛이 특별해진다는 이른바 ‘기(氣)의 요리’를 맛보는 호사(?)를 누린 대표적이 것이 이른바 팔진요리(八珍料理)다.
고대의 주(周)나라 천자가 즐겨 먹었다고 해서 오늘날에도 터무니없게 부풀려지는 이른바 여덟 가지 요리, 원숭이 입술(猩脣 요리 : 잠시도 놀리지 않고 먹어대기에 특별나다), 사슴 목줄(鹿口亢 요리 : 항상 뭣인가 삼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 낙타 발톱(駝蹄 요리 : 끊임없이 거친 사막을 걷기에 운동량이 많은 부위), 그리고 낙타의 등(駱峰 요리 : 무거운 짐을 항상 싣고 있다), 표범의 애깃보(豹胎 요리 : 새끼를 배면 태어날 때까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요동친다), 잉어 꼬리(鯉尾 요리 : 쉬지 않고 흔들어 댄다), 매미 배(蟬腹 요리 : 끝없이 울어 댄다), 곰 발바닥(熊掌 요리 : 동면하는 중에도 쉴새없이 핥기에 상당한 영양분이 있다고 여겼다)가 바로 그것들이다. 해당 부위가 색다르고 특별나기에 별미라는 생각인데 따지고 보면 그곳에 핵심적인 기(氣)가 모여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데서 생겨난 요리 철학이다.
이중 곰 발바닥 요리는 대표적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는 것이 정설. 유학의 스승 맹자(孟子)도 먹고 싶어했다던가, 삼국지의 맹장인 여포(呂布)가 즐겨 먹었다고도 하여 마치 맛과 강장의 심벌 요리로 여기는 경향도 있으나 곰이 동면하면서 발바닥을 핥는 것은 거기에 무슨 영양분이 스며나와서가 아니라 발바닥의 근육을 동면 도중에 쓰지 않게 되자 근육이 해이해지고 이 때문에 가렵기에 핥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혹자는 곰이 꿀을 좋아하여 벌집만 보면 앞발로 움켜쥐고 꿀을 먹기에 앞발바닥에 오랫동안 꿀이 배어서 영양가가 높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만 보아도 앞발바닥이 요리 대상이지 뒷발바닥은 아닌 것이다.
중국의 기록을 살펴보아도 역대 황제 가운데 최고의 미식가(美食家)로 꼽히는 남송(南宋) 고종의 ‘천하일품 1백84종 요리’ 항목에 곰 발바닥 요리는 없고, 역시 미식가로 꼽히는 청대의 건륭제(乾隆帝) 시절 수라상 식단인 『어선방당책(御膳房?冊)』이나 건륭제마저 얼굴을 붉힐 정도의 식도락으로 유명한 서태후(西太后)의 식사 규정에도 곰 발바닥이 요리 재료에 나오지 않는다. 오정격의 『만족식속여청궁어선(滿族食俗與淸宮御膳)』에 보면 수많은 요리 재료와 제비집·생선 지느러미·목이버섯 요리가 적당량 나오는데 곰의 경우는 어떤 부위도 나오지 않는다.
명대(明代)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나오는 곰 발바닥 익히는 법은 부드럽게 하는 것으로 그저 참고 사항 정도의 기록일 뿐. 중국 여행 중에 몇 십만 원짜리 웅장(熊掌) 요리 맛보았다고 법석대는 분들에게 좀 미안한 소리지만 꿀이 밴 앞발바닥조차 상당한 인사들 몫이라는 사실이다. 요즘 공연히 별미 요리 찾지 말고 날씨도 더워지는데 우리 전통음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값도 그렇고 몸에도 유익하지 않을까.
/나채훈(중국역사문화연구소장)
2011년 06월 10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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