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송암미술관(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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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1. 4.29)
송암미술관
/719회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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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지을 겁니까, 기왕이면 인천이 낫지 않겠습니까, 서울에다 세워봐야 별로 빛이 안 날 겁니다, 인천에선 크게 환영할 겁니다.' 대충 이런 말씀을 드린 후 취재를 마치고 나오려니까 방문기념품을 들려주셨다.
당시 동양화학의 인기상품인 세제 '옥시' 세트였다. 송상(松商) 특유의 소박함이 배어있는 간명한 어투와 '옥시'의 조촐함도 상쾌했지만, 인천이 큰 선물을 받게 됐다는 생각에 들떠서 귀사 후 곧바로 기사를 썼다.
이튿날 본보 1면 톱기사 제목은 '이회림 회장, 인천에 미술관 건립 확정'이었다. 그 며칠 후, 다시 이회림 회장을 찾아뵈었더니 "이 사람아, 그렇게 쐐기 박듯 쓰면 어떻게 하나!" 하시면서도 파안대소를 지으셨다.
그 후 필자는 종종 회장의 부름을 받아 송암미술관 공사 현장에서 이런저런 의견을 냈다. 어떤 때는 "저널리스트가 그것도 못 이해하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고, 비장중인 콜렉션을 자랑도 하던 딜레탕티스트셨다.
천정에 그린 '인천상륙작전도', '김준근 풍속화'의 복사본 게시, 일본측 실측자료로 복원한 '광개토대왕비' 등과 일부 '모작'의 존치는 사실 이회림 회장의 카리스마에 원인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것이 시 기증(환원)에 결정적 흠결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향후 누가 그 뒤를 이을 것인가? 재개관한 송암미술관이 좋은 선례로 남았으면 한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4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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