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소통과 신뢰가 없는 정략으로 될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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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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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신뢰가 없는 정략으로 될까
/나채훈(중국역사문화연구소장)
청(淸)은 소수민족 정권이었기에 민중의 결사(結社)를 엄격히 금지시켰다. 다수의 한족(漢族)이 단결하여 일어서면 간단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니 그럴 만했다. 허나 먹고 살기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자기 방어를 위해 단결하려 했다. 뱃사람과 운송업 종사자, 행상인, 노점상 등이 특히 더했다.
그들은 반체제(反體制)가 아니었으나 정부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므로 비밀결사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정의 강력한 금지 속에서 적당히 넘어간 그룹이 있었다. 신앙을 내건 집단이었다. 결사체를 만듦에 있어 신앙을 핵심으로 한다는 것은 가장 좋은 조건이기도 했다. 신앙의 공덕을 가르치면 많은 무리를 손쉽게 모을 수 있으려니와 신앙이라는 유대감으로 구성원의 단결을 굳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청대가 중반에 휘청거리기 시작하여 ‘태평천국의 난’까지 종교적 결사에 의한 반란이 자주 일어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까닭에 종교적인 이유라고 되어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사실 신앙과 관계없는 생계형 반란도 상당수 있었으나 조정에 올린 보고서에는 오로지 신앙 때문이었다.
까닭이 있었다. 민란이 일어나면 이는 지방관의 다스림이 고약했기 때문이라고 해서 그곳의 장관에게는 중벌이 내려지는데 만일 성시(城市)가 함락이라도 되면 그곳의 장관은 반드시 사형에 처해졌다. 허나 종교 봉기로 성시를 잃었을 때는 장관직에서 해임될 뿐 죽음은 면하게 되어 있었다. 종교 봉기는 일률적으로 사교(邪交) 취급을 받는 등 이는 정치를 넘어선 이상 현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
사교의 발생은 정치와는 다른 차원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정치가인 지방장관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고방식이 청의 정략이었다. 그리하여 생계형 결사체들도 은근히 종교적 형태를 취했다. 예를 들면 강남 지방의 쌀을 대운하로 북쪽에 수송하는 뱃사람들은 무위교(일명 羅橋)를 표방했다.
나조(羅祖)라는 식량 수송 군인이 친근감을 가진 뱃사람에게 전파시킨 것인데 종교적 유대감으로 더욱 결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겉으로 안청방(安淸幇)이란 이름을 내걸었다. 방(幇)이란 그룹을 말한다. 따라서 이를 풀이하면 ‘청나라 조정에 협력을 하는 집단’이 되는 셈이다.
이들이 훗날 청방(靑幇)이라 불리고 중국 암흑가의 가장 힘있는 단체로 변한다. 안청방 → 청방은 직업적인 자생단체에서 마피아적 조직으로 변모된 것이어서 그 성립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천지회(天地會) 같은 정치적 비밀결사가 이들을 포섭하여 반청(反淸) 저항운동 조직으로 끌어당겨 삼합회(三合會)니, 삼성회(三星會)니, 삼점회(三点會)니, 가로회(哥老會) 등의 별명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로 분파가 생겨나고 마침내 손문이 이들 유력자와 손잡고 청나라 조정의 숨통을 끊는 근대의 혁명을 기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지금 과학벨트 선정을 둘러싸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무효 소송에 불복종운동, 그리고 정권 퇴진 주장까지… 광역단체장의 단식농성에 유치위원들의 혈서(血書)까지…, 투쟁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지자체도 엄연히 정부의 일원인데 정부를 공격하고 몰아세워 갈등과 국론 분열에 앞장서는 모습은 딱하기 이를 데 없다.
따지고 보면 과학벨트는 낙후 지역을 개발하는 국책사업도 아니고, 공공기관 이전처럼 국가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사업도 아니다. 기초과학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과학선진화의 비전을 지닌 사업인 만큼 모든 결정은 ‘연구 효율의 극대화’ 원칙 아래 이뤄져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과학벨트의 분산 배치니 한국토지주택공사 이전 문제까지 한마디로 정략적 아이디어로 해결하려다 보니 정부 결정에 불신이 커지고 지역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이를 두고 지역적 이기주의나 총선을 1년 앞두고 애향심으로 포장한 정치적 야심가들의 준동으로 여기는 시각은 마치 청나라 조정의 결사체를 바라보던 모습 같아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잘해보겠다고 열심히 했지만 국민의 이해를 얻지 못했다”는 투의 어정쩡한 상황인식으로 오늘의 국정 난맥상을 해결할 수 있을까? ‘잘해보겠다’, ‘국민이 믿길 바란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소통과 신뢰를 잃어버린 국정의 담당자에게 돌아갈 민심의 회초리는 가혹할 게 분명하다. 정말 민심에 겸허히 귀기울일 때다.
2011년 05월 20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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