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 韓中日 삼국지/‘바이러스의 역습’도 헤아려 볼 때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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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20. 2. 6)
‘바이러스의 역습’도 헤아려 볼 때다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5년 전 WHO(세계보건기구)는 새로운 인간 감염 질병의 ‘이름짓기’ 원칙을 세웠다. 구체적으로 지리적 위치, 사람 이름, 동물·식품 종류, 문화, 주민·국민, 산업, 직업군이 포함된 병명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특정 지역과 종료, 민족공동체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우한폐렴’은 지리적 위치 규정에 반한다. WHO는 이 병명을 ‘2019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로 명명했다. 청와대가 이 권고에 따라 ‘신공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불렀다. 병명 정정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보수 성향의 누리꾼들은 ‘중국 눈치보기’라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
‘우한폐렴’을 강조해 정부를 비웃고 중국 혐오를 부추기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같은 전염병을 놓고 호칭을 다르게 부르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도가 우리 사회에서 작든 크든 끊임없이 누군가를 혐오하고 그를 근거로 배제를 합리화해온 연장선상에 있다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 보면 저마다 흰색, 검은색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다. 어디선가 기침소리만 들리면 주변은 썰물 때처럼 변한다. 중국말이라도 들리면 거의 도망치듯 움직인다. 뒤이어 혐오와 배제의 노골적인 속삭임이 터져 나온다.
"중국 ×들 정말 더러워. 어떻게 박쥐를 먹느냐구", "도대체 몇 번째야. 전염병이라는 병은 모두 걔들이 옮기잖아!"
전염병은 항상 있어 왔다. 중세의 흑사병, 1918년 봄의 스페인 독감, 2003년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2015년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까지 적잖은 사상자를 냈지만 지구촌 전체가 적절히 통제해왔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겠지만 지나친 호들갑 떨 일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신종 코로나’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오는 ‘혐오와 배제’의 행태가 아닐까. 이를 부추겨온 언론, 끊임없이 내 편, 네 편을 갈라치는 정치권, 아파트 브랜드로, 주거 형태로 이웃과 친구를 혐오·배제하는 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된 이런 풍토를 새삼 떠올리는 건 ‘바이러스의 경고’가 지닌 의미를 제대로 헤아려보자는 뜻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록펠러재단과 질병 관련 과학자들은 지구에서 일부 감염병을 완전히 몰아낸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운 바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자금과 노력을 쏟아 부은 황열이나 말라리아 박멸 계획은 실패했다.
‘인수공통감염병’이 문제였다. 말 그대로 동물과 인간이 모두 걸리는 주로 동물의 바이러스·세균·진균 등 병원체가 인간한테 옮겨 생기는 병은 감염 경로를 밝히기도 어렵거니와 동물 몸속에서 계속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박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 번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도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AFT 통신) ‘글로벌 바이롬 프로젝트’는 자연계에 미지의 바이러스가 170만 종류가 되는데 그 절반이 인간에게 유해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으며 이는 야생동물 서식지를 파괴하는 벌목, 도로 건설, 도시 확장 같은 인간들의 활동에 연관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다.
중국인의 식습관과 보건위생, 우한의 당서기가 실토했듯이 초동대응 실패가 이번 ‘신종 코로나’를 전파시킨 원인이지만 요즘 세계 주요 도시의 식생활 문화에 야생동물 섭취가 진귀한 경험이라며 유행되고 있다는 점은 되새겨봐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한마디로 ‘인간의 생태계 파괴가 근본 문제’이며 의학 발달도 이를 예방할 수 있다는 지나친 기대감도 한몫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WHO는 향후 인류 미래를 위협하는 3대 요인으로 식량 부족과 기후 변화, 전염병 유행을 지목한 바 있다. 신종 전염병은 자연의 섭리에 거스르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경고로서 생태계의 역습이라는 것이다.
"기침과 재채기는 반드시 입을 가리고 하라"든지 "손을 씻을 때 비누를 사용해 30초가량 흐르는 물을 사용하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가능한 가지 마라" 등등의 예방 수칙만큼이나 우리의 일상에 깊게 자리잡은 혐오와 배제를 씻어내고 더불어 살아갈 미래를 고민해보는 노력도 함께해야 할 것 같다.
20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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