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경호(67회) 인천경제콘서트/해외여행 소고(小考) (퍼온글)
본문
퍼온곳 : 기호일보(11. 3.22)
인천경제콘서트
해외여행 소고(小考)
![]() |
▲ 영림목재 이경호 대표
‘영혼을 흔드는 땅으로의 초대, 신비로운 바람이 머무는 도시, 발길 닿는 곳마다 볼거리 가득, 가슴 벅찬 그림들과 조우하는 곳, 하늘이 내린 축복의 섬으로, 과거와 현재를 거닐 수 있는 곳, 구름 위의 땅을 걷다, 눈부신 설원을 한 발짝 내딛는 묘미’ 등등 신문의 투어(tour)난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독자들의 마음을 바깥으로 유혹하고 있다. 정말 좋은 세상이 되었구나 싶다. 주말에 연휴라도 끼면 북적북적거리는 공항 모습을 보면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 풍물도 넓히고 여행도 즐기는 여유로움을 갖는 것에 대해 누구라도 뭐라 할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런 여건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기회가 되면 권유할 사항도 될 것이다. 다만 남이 가야 하니까 나도 해야 되고, 옆집 또는 친구들이 간다 해서 마음 상하거나 괜히 짜증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또한 국내 여정도 별반 경험이 없으면서도 해외여행이 더 좋을 거라고 무조건 선택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자신의 벅찬 계획에 버블이 끼어 있지는 않은지 염려되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1960~70년대에는 누가 해외라도 나간다 하면 김포공항에 보통 대여섯 명 이상이 모여 환송을 해 주며 부러운 눈길을 주곤 했었다. 그 당시 국제선을 타더라도 소프트 음료 외의 맥주나 양주는 승무원에게 돈을 주어야 마셨고, 영화 관람이나 음악 감상을 위한 이어폰도 별도로 계산해아 사용이 가능했다. 한 번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향하는 중이었는데 앞좌석으로부터 한 장의 종이가 회람(回覽)용으로 넘어오고 있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마침내 좌석 차례가 되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항공기 조종사가 손수 볼펜으로 작성한 현재의 비행속도, 바깥 온도, 도착 예정시간 등등의 비행기록이었는 바, 지금 같으면 전면의 화면에 보여 줘 간편하게 볼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참으로 신기하게 느끼며 그 데이터를 뒷좌석으로 넘겨주었던 기억이 난다.
인천에서 사업하는 분으로서 가장 많은 탑승기록을 갖고 있는 분은 내가 아는 한 코스닥에 등록된 ‘와이지-원’의 송호근 사장이다. 지난번 어느 날에 우연히 옆좌석에 앉아 오랜만에 반가이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탑승한 비행기의 탑승기록이 해당 비행사에만 200만 마일이 훨씬 넘어 있었다. 미디어를 통해 잘 알려진 분이었고 비행 중 사무장이 인사를 별도로 올 정도의 특별손님이었지만 에코노미 좌석을 타고 있었다. 마침 지역 이야기가 나와 상공회의소 참여를 권유했더니 수출입 업무가 빈번해 인천의 무역관계 모임에는 자주 참가해 왔으므로 기회가 되면 기꺼이 가입하겠다는 뜻을 받았다. 1박 2일의 여정에 직원들은 뒷좌석에 앉아 출장업무의 결과를 정리하고 있다하니 수출의 역군이야말로 남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 필자 사무실의 왼쪽 책상 상판 밑엔 일본어로 된 독특한 청색의 양식(樣式) 1매가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져 있는데 그 사연인 즉 다음과 같다. 수년 전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귀국할 때의 일이다. 새로이 공항에서 옵션사항으로 신청할 서류가 있었는데 시간도 있고 하여 여러 가지 기재사항을 적고 신청 수순에 따라 일정하게 접어서 어느 곳에 넣어 달라는 내용대로 일단 준비한 후, 근처에 있던 일본 여직원에게 확인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저쪽 데스크에서 사인이 필요하다 해서 그렇게 하고 이제 되었느냐 물었더니 또 이쪽에서의 확인도 필요하다 해서 그렇게 하고 왔는데 또다시 틀린 부분이 있으니 다시 작성해 오라 하는 게 아닌가. 아니 한두 번에 지적해 주지 않고 세 번씩이나 왔다갔다하게 만들다니. 그만 화가 벌컥 나 그 직원 보는 앞에서, 당장 꼭 필요치만은 않았던 그 서류를 마구 구겨 버린 후 씩씩거리며 그녀 앞에 있는 쓰레기통에 확 집어 던진 후 옆에 있던 의자에 덜렁 앉아 버렸다. 그렇지만 그 여직원은 생글거리며 그렇게 계속 손님들의 업무를 거들고 있었다.
화를 삭이며 앉아 있다 보니 주위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고, 또 곰곰이 생각하니 그녀와 나 사이에 언어장벽이 있을 수 있었고 또 문화가 다를 수도 있는데 공연히 성질을 낸 것이 아닌가 싶어 일부러 쓰레기통까지 뚜벅뚜벅 걸어가 통 내부의 윗부분에 그대로 있는 그 서류를 다시 집어들어 가방에 그냥 넣고 출국장으로 바로 향하면서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더니 그때도 생글거리며 눈짓을 주고 있었다. 참으로 그녀들의 웃는 친절 하나는 못말리겠구먼. 속이야 제 자신도 부글거리고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귀국 즉시 그 서류를 눈에 잘 보이는 책상 쪽에 매달아 놓고, 이 양식을 스스로 자주 보게 하여 이후 자신의 참을성을 터득하게 하고 생활에도 접목시켜 보고자 한 것이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에게 배웠던 바, 아주 금실이 좋았던 어느 노부부 이야기에서 벤치마킹(?)해 왔었다. 어느 날 주위에서 그 부부에게 어떻게 그렇듯 평생 동안 싸움 한 번 없이 금실 좋게 살아올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만, 빙그레 웃으며 방 구석에 있는 항아리를 가리키곤 “우리 부부 사이도 항상 좋을 수만 없었지요. 다만 화가 나면 종이에 뭔가를 적어 저 항아리에 던져넣곤 했다오.” 정말 그 항아리 속엔 노부부의 세월만큼이나 많은 종이뭉치가 있더란 것이다. 최근 봄철을 맞아 특히 극성대는 해외여행 안내지를 보며 잠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본다.
2011년 03월 21일 (월) 16:20:43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댓글목록 0
劉載峻님의 댓글
이 경호 친구, 참으로 감회가 새로운 해외여행...제목 글 잘 읽었네. 1년 12개월 가운데 9개월을 25년간 출장 다니던 그런 한 때가 있었네 2001년 911 사태 발생 후 한발짝도 항공기 근처로 옮긴 적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어 글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