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경호(67회) 인천경제콘서트/초봄을 기다리며(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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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1. 2.22)
인천경제콘서트
초봄을 기다리며
/영림목재 이경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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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림목재 이경호 대표
사무실 창 밖의 화단에 눈이 혹독하게도 참으로 많이 쌓이고 있다. 소복하게 또는 그득히라는 따뜻한 표현을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작년 초가을의 일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실내에서 곱게 자라며 제때에 연한 분홍꽃을 피우곤 하던 제법 큰 관상용 나무 두 그루가 어인 연유인지 갑자기 진딧물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서둘러 약을 뿌리고 온종일 햇볕에 쬐도록 배려하였으나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옆의 식물에까지 번질 염려까지 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생각다 못해 이 낙엽관목들을 과감히(?) 화분으로부터 해방시키기로 마음먹고 회사의 아웃-도어 상품 전시를 위하여 데크·벤치·펜스·파고라 등과 더불어 설치한 사무실 앞 화단에 그냥 심어버렸다. 그리곤 틈나는 대로 가을 내내 물을 주고 정성껏 관리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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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금년 겨울에는 유난히도 폭설이 내리고 기록적인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지 않은가. 강원도 강릉의 경우 지난 11일 77.7㎝의 눈이 쌓여 1911년 기상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음은 물론이고 부산과 울산·창원·포항 등 동남권 산업벨트에 눈폭탄이 강타하면서 현대자동차와 중공업, 포스코 등 주요 기업들이 전면 휴무에 들어가고, 이 피해는 업종별로 부품협력업체들의 연쇄적인 가동 중단에다가 수송 및 배송 기능까지 함께 마비되면서 수조 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한다. 우리 중소기업들에게도 이런저런 피해가 미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우선 가까운 예로 직원들의 출근 지각사태로 정상적인 생산라인에 지장을 주고 있고, 현장에서는 밤사이 얼어붙은 원자재를 녹이고 다시 분리시켜야 하는 등의 부가업무도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또한 이런 기상이변은 채소류를 중심으로 소비자물가의 급등을 유도했다. 현 정부 들어 3년간 물가상승률은 10.8%로 직전 3년의 7.7%보다 3.1%p 높았으며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2.9%로 비교적 낮았지만 채소류 등 신선식품지수는 1994년의 23.8% 이후 최고치였다고 한다.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지난 8일 제주도 서귀포시에는 매화가 활짝 피었으며 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우산을 쓴 시민들이 그 동안 기다리던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미 성급한 라디오에서 ‘봄의 소리’가 울려나오는 것을 보면 역시 추위가 막바지에 올수록 또한 봄이 멀지 않았다는 어느 시인의 마음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분위기에 맞을 듯싶은 퇴계 이황(李滉)의 시가 특히 기억에 새롭다.
一樹庭梅雪滿枝 한 그루 매화 가지마다 눈이 가득 피었건만
風塵湖海夢差池 세상일 어지러워 꿈은 마냥 어수선타
玉堂坐對春霄月 봄밤에 옥당에 앉아 달을 우러러보니
鴻雁聲中有所思 기러기 우는 소리에 생각이 산란하네
또한 이 김에 퇴계 이황을 사모하여 평생 守節로 終身했다는 丹陽 태생의 난과 매화를 사랑한 두향(杜香)이에게 달을 보며 읊어 주었다는 이황의 시를 이에 한 번 더 옮겨 보고자 한다.
獨倚山窓夜色寒 홀로 창에 기대니 밤빛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 매화 가지에 둥근 달이 떠오른다
不復更喚微風至 소슬바람을 새삼 불러 무엇하랴
自有淸香滿院間 맑은 향기 온 집안에 절로 풍기네
실내에서만 살아 온 꽃나무를 바깥에 옮겨 심어, 보다 자유로이 흙에서 살아가도록 함이 잘한 일일까. 과연 저 꽃나무가 이렇듯 쌓여 가는 눈속에서, 바람마저 날카로운 이 추위를 내 의도대로 무사히 견뎌낼 것인가. 아니 공연한 걱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다만 중소기업들을 흔히 잡초라고 불리우며 생존해 가는 논리를 저 꽃나무에도 접목시키고 싶었다. 계곡 어느 한 구석에, 또는 산 언덕에서 홀로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사정없이 불어오는 칼바람과 폭풍, 뜨거운 태양 그리고 때로는 벌레들의 공격 등에 저항하고 순응해 나가며 자기만의 생존법을 터득하는 중소기업들과 유사한 점들이 많지 않은가 말이다.
머지않아 곧 눈 녹는 소리가 들릴 것이며 먼 산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버들가지가 물이 오를 때, 옮겨 심은 저 꽃나무들도 마침내 숨을 토하며 연두색의 연한 잎이 무사히 보이길 소망해 본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삶의 견고함과 행복을 전달케 해 주길 기대하며, 폭설에 묻혀져만 가는 저 꽃나무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방랑시인 김삿갓에게 짐짓 부탁해 보았더니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런 시를 보내오는게 아닌가.
天皇崩乎地皇崩 천황씨가 죽었느냐 지황씨가 죽었느냐
萬樹靑山皆被服 나무와 청산들이 모두들 상복을 입었구나
明日若使陽來弔 만약 내일 아침 해님이 문상을 오신다면
家家簷前淚滴滴 집집마다 처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게 되리라
2011년 02월 21일 (월) 18: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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