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경호(67회) 인천경제콘서트 /주당(酒黨)예찬론(禮讚論)(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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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1. 2. 8)
인천경제콘서트
주당(酒黨)예찬론(禮讚論)
/이경호 영림목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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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호/영림목재 대표이사
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왔으며 과실이나 벌꿀 등의 자연발효에 의한 것이 그 원형이라 한다. 삼국시대 이래 양조기술의 발달로 청주가 등장했지만 탁주와 구별이 뚜렷하지 않았는데, 같은 원료를 사용해서 탁하게 빚을 수도 있고 맑게 빚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주는 술이 다된 탁주독에 용수를 박아 얻은 술을 말하는데 약주(藥酒)로도 일컬어졌으며 현재는 찌꺼기를 제거한 것을 청주, 제거하지 않고 혼탁성을 갖게 한 것을 약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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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우리와 가장 친근한 소주는 오래 보관할 수 없는 일반 양조주의 결점을 없애기 위해 고안된 것이고 증류주인 소주가 한국에 전해진 것은 고려때 원(元)나라부터였으며, 원나라가 고려와 함께 일본을 정벌할 때 안동(安東)을 병참기지로 만들면서 '안동소주'가 알려지게 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더욱 발전하였다고 한다.
이 술과 연관되어 주당들에게 친근(?)한 단어만해도 술고래, 술끼, 술꾼, 술독, 주붕(酒朋), 주석(酒席), 술판, 술추렴, 술타령 등이 있겠으며 속어(俗語)로는 <술 덤벙 물 덤벙>, <술 먹여 놓고 해장 가자 한다>, <술 받아주고 뺨 맞는다>, <술은 초물에 취하고 사람은 훗물에 취한다>, <술 익자 체 장사 지나간다>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시선(詩仙)과 주신(酒神)을 겸비한 인물을 택하라면, 중국 당(唐)나라의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인 이백(李白)을 흔쾌히 누구라도 뽑을 것이다. 흐르는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떠내려고 하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그는, 산(山)과 달 그리고 술(酒)을 매개체로 환상성(幻想性)이 짙은 시세계(詩世界)를 배경으로 하여 선계(仙界)에 동경심을 가지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렇지 않고서는 깊은 산속에서 술을 찬미해가며 그렇게 많은 명시를 남길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이에 이태백의 그 유명한 장진주(將進酒)를 잠시 옮겨본다.
그대 보지 않았는가 황하의 물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분주하게 흘러가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奔流到海不復廻
또 보지 않았는가 고당명경에 비치는 백발의 슬픔을/又不見高堂明鏡悲白髮
아침에 청사같이 푸르던 머리가 저녁에는 백설같이 세었구나/朝如靑絲暮如雪
인생에서 뜻을 얻으려면 반드시 힘을 다하여야 하느니/人生得意須盡懽
황금 술단지를 달빛 속에 헛되이 내버려두지 말지어다/莫使金樽空對月
또 그의 시가 인생과 술에 회자(膾炙)되어 온 명구중의 하나인 "칼을 뽑아 물을 베어도 물은 여전히 그냥 흐르고, 술잔을 들어 걱정을 지우지만 걱정은 여전히 걱정으로 남아 있다"는 내용을 보면 그 스스로 주중(酒中)의 선(仙)으로 칭하였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인천지역에서 "빨대"라는 별칭(別稱)으로 칭송되어오신 분들이 계시는 바, 임남재 전 대한적십자사인천지사 회장님과 허문명 전 전국문화원연합회인천광역시 지회장님 그리고 심갑섭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님 세분이 자타공인하는 그 대표분들이시다. 오래전 세분이 자칭 서울의 막강한 빨대클럽과 두번이나 시합을 해서 모두 항복을 받아내셨다는 현존하는 무용담(武勇談)이고 보면 그 명성이 헛되지 않은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정해영 철우기업 회장님과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인천광역시 회장이셨던 김민기회장님도 여전히 노익장(老益壯)을 뽐내시고 계시다는 소문이고 한광덕, 김덕배, 김인학, 이상국, 박대용사장 등도 두주불사(斗酒不辭) 명단에 아직 올리고 계시긴 하다.
다만 현존하시는 주선(酒仙) 빨대멤버들께서 그 젊은 후계자들을 찾고 계시다는 후문이지만 당장에는 상당기간 어림없어 보이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왜냐하면 주량면에서도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디 술만 잘 마신다고 해서 그냥 <빨대 자격>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에 상응하여 기본적이나마 풍류를 제대로 알고, 좌석에서 최소한의 배려와 자제력 그리고 멋과 품격이 어우러지지 않고는 그 고매한 분들의 뜻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마침 이태백의 생애 기간(701~762)이 필자의 금년 나이와 우연히 일치함에 창밖의 설경(雪景)에 한눈을 팔아보며 평소 애주가, 아니 부질없는 호사객(好事客)으로서 새해부터 술타령에 대한 단상(斷想)에 젖어본다.
2011년 02월 07일 (월) 17:4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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