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홍예문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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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1. 2. 9)
홍예문
/685 회 조우성의 미추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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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후에는 더욱 가속화돼 일본인이 한국인을 능가해 1만2천여 명에 이르자 본정(本町·중앙동), 중정(仲町·관동), 산수정(山手町·송학동)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조계를 산근정(山根町·전동)까지 넓혀 나갔다.
그 과정에서 산기슭을 터널처럼 뚫었는데 그것을 일본인들은 '혈문(穴門)'이라 불렀다. 구멍 '혈' 자에, 문 '문' 자니까 말뜻은 틀린 게 없어 보이지만 어쩐지 삭막하게 들린다. '구멍 문'. 아무래도 멋쩍은 작명이었다.
이 '구멍 문'에다 일본인 여성이 대담하게 서서 오줌을 누는 것을 조선인 청년이 보고 괘심하게 여긴 나머지 볼기를 때렸다가 외레 일경에게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것이 언제 '홍예문(虹霓門)'으로 바꿨는지는 오리무중이다. 1933년에 발행된 인천부사에 '혈문'이라 등재된 것을 보면 그 후일 듯 여겨진다. '홍'과 '예'가 다 '무지개'란 뜻이니, 비로소 '무지개문'이란 제 이름을 찾은 것이다.
이름에 걸맞게 자태를 뽐내온 이 문이 인천시유형문화재가 된 것은 2002년이었다. 여름철이면 담쟁이들이 화려한 초록의 잔치를 벌여 그 아름다움이 더욱 빛났다.
그런데 최근 전에 없던 투신자살 사건이 그곳에서 벌어졌다. 세상을 비관한 50대였다. 사람들은 '무지개'라 했지만, 한 사람에겐 허공에 걸린 자살대였다.
/객원논설위원
2011년 02월 0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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