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나채훈(65회)의 중국산책/'충신(忠臣)이 되기 싫다'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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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1.14)
나채훈의 중국산책 /
'충신(忠臣)이 되기 싫다'
‘포용의 리더십’은 중국 4천년 역사에서 성공한 최고통치자들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덕목이다. 명군으로 꼽히는 당태종(唐太宗) 이세민의 경우는 좀 더 다채롭다. 원래 그는 전(前)왕조의 수양제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키고, 이후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무용을 과시한 봉기와 진압, 건국의 주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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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집권하자 예전의 부하들이 환호작약했다. 그들은 궐기했던 핵심세력인만큼 자부심도 있었고, 이상적인 국가건설의 꿈도 컸던 것이다. 그들은 과거를 말끔히 제거하고 새로운 체제를 원했다. 그런데 이세민은 과거를 청산하기는커녕 옛 수양제 측근에서 간신배 노릇을 했던 자까지 모두 끌어안은 것이 아닌가. 궐기했던 자들은 너도나도 몰려가 그들을 성토하고 멀리 유배보낼 것을 청원했다. 그때 이세민은 “잘 생각해보시오. 신하란 모름지기 군주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오. 그들이 간신배가 된 것은 수양제가 그런 신하들을 좋아했기에 그리 된 것이고, 짐은 진실로 충신을 좋아하니 그들은 곧 충신으로 변모할게 아니겠소”하고 간단히 선을 그었다.
불평하던 신하들이 입을 다물었는데 의외의 인물이 ‘나는 충신이 되고 싶지 않다’고 나섰다. 위징이었다. 그는 궐기에 참여하긴 했으나 중도 가담자였고, 더구나 이세민의 집권을 저지하려 했던 경력이 있었다. 다행히 이세민이 과거를 용서하고 그의 배짱과 식견을 높이 사서 간의대부(諫議大夫 : 대략 감사원장 쯤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로 전격 감동발탁하여 그의 직언(直言)을 경청하고 있었다.
“뭣이오? 충신이 되지 않게 해달라니?” 깜짝놀라 반문하는 이세민에게 그가 설명했다. “자고로 충신이 무엇입니까? 군주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걸고 간하다가 마침내 진노를 사서 죽고 맙니다. 심하면 가족과 일족까지 모두 죽습니다. 자신은 죽고, 집안까지 망친 후에 ‘충신이었다’는 찬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신은 목숨을 잃지 않고, 집안일족도 편히 살면서 폐하를 모시고 싶은 것입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위징이 덧붙였다. “충신이 많아질수록 그가 모신 군주는 폭군이 돼야 합니다. 신이 편안해지려는 것보다 폐하가 역사에 폭군으로 기록되어서야 쓰겠습니까?”
위징은 이때의 문답을 통해 한(漢)대에 교훈적인 설화집을 펴냈던 유향(劉向)이란 학자의 저서 <설원(說苑)>에 나오는 육정육사(六正六邪)에 대해 설명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군주를 제대로 보필하는 여섯 유형의 신하를 육정(六正)이라 했고, 군주를 망치게 만드는 여섯종류의 신하유형을 육사(六邪)라는 내용이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공직에 임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과 행동의 지침서라 할만하다.
그 육정의 신하 유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①성신(聖臣 : 미리 앞날을 제대로 준비하여 보필하는 신하), ②양신(良臣 : 성품이 좋고 예의바르며 간언을 잘하는 신하), ③충신(忠臣 : 좋은 인재를 추천하고 옛 행적을 격려하는 신하), ④지신(智臣 : 지혜로워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복으로 만드는 신하), ⑤정신(貞臣 : 근검절약하여 절도있게 살아가는 신하), ⑥직신(直臣 : 군주의 면전에서도 할 말은 하는 강직한 신하).
세상의 공직자가 이 여섯 유형의 범주안에 있다면 통치자건 국민이건 그 누구라도 걱정이 없을 터, 더욱이 이런 덕목을 모든 공직자에게 요구할 필요조차 없다. 통치자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진, 내각을 비롯해 국정의 최상층부에 있는 인사들만 이 유형에 자신이 속해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21세기는 무지개 빛깔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요즘 감사원장의 국회동의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가 대통령의 측근으로 일했기에 때로 대통령을 상대로 할 수 있겠냐는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었고,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 민간인 도청에 관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로펌에서 받은 억대의 월급이 수상하다는 주장 등등 또다시 무슨 비리백화점 장부 들춰지듯이 시끌벅적했었다. 그렇다고 ‘적격자가 아니다’고 하는 여야 정치인들은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걸까?
‘충신(忠臣)이 되기 싫어한’ 위징이 평한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고위직 인사코드에 어찌하여 육정에 속하는 인물이 이다지도 없는가 하고 거듭 탄식할 것만 같다.
2011년 01월 14일 (금)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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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호님의 댓글
나채훈 : 1947년에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및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주부생활> <여원> <리빙뉴스>의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최근에는 주로 중국 고전서 연구에 바탕을 둔 저술에 전념하고 있다. 중국 역사와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저자는 중국 고대 사상의 역사적 자료를 두루 연구했으며,
이덕호님의 댓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이 갖추어야 할 지혜와 처세를 탁월한 시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주요 저서로 『정관정요』 『관자요록』 『삼국지신문』 『중국인의 발상법』 『누구도 나를 버릴 수는 없다』 『위대한 CEO 제자백가의 경영정신』 『1패에 기죽지 말고 2승을 노려라』 『유비의 리더십』 『카리스마 리더 조조』 『조조와 유비의 난세 리더십』 『하루 10분, 삼국지를 통해 배우는 성공법칙』 『삼국지에서 배우는 2인자 리더십』 등이 있다.
이덕호님의 댓글
나채훈 : 인천고 65회 졸업, 소설가
李桓成님의 댓글
70회 나채경의 친형
60년대 폰드크림(U.S.A)의 영자를 유창하게 번역하던 기억 납니다..
우리집 자주 놀러왔습니다..
누나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