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김병종(71회)/[말모이 100년, 내가 사랑한 우리말] 설렘(퍼온글)
본문
퍼온곳 : 조선일보(19.12.19)
[말모이 100년, 내가 사랑한 우리말] [13] 설렘
/화가 김병종
말모이 100년, 내가 사랑한 우리말
알싸한 아침 작업실. 무쇠 난로 위에서 물 주전자는 푹푹 김을 내며 끓는데, 나는 기다린다. 블랙커피 반 잔을 마시면서도 기다리고,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의 묵직한 향이 낮게 깔리며 브람스의 선율과 섞여 드는 순간에도 기다린다.
그것 없이는 아침마다 만나는 백(白)의 공포를 이겨낼 수가 없다. 그것이 활활 연소해 타오를 때에야 비로소 맹수 앞에 선 전사처럼 창 대신 붓을 들고 하얀 화판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흡사 고도(Godot)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나는 기다리고 기다린다.
무릇 모든 '쟁이'가 그럴 테지만 나는 일찍부터 그 불가해한 느낌에 포박돼 있었다. 아니 중독이라는 표현이 낫겠다.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엄습해오는 그 대체 불가의 느낌. 육적이고 영적이며 언어적이고 비언어적인, 온몸을 가볍게 진동시킬 만한 그 야릇한 흥분과 전율, 그 열감(熱感)을 대체 '설렘'이라는 말 아닌 다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의 세월은 허기진 듯 그 느낌을 쫓아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고풍스러운 기와집 역사(驛舍)가 건너다보이는 소읍의 한 다방에서 처음 그림과 사랑에 빠져 전시를 열었던 열대여섯 무렵부터 치자면 근 오십 년 세월이다.
그러고 보면 이 무자비한 광속의 세월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 말이 새삼 눈물겨울 지경이다. 깨지고 부서지고 거품처럼 떠다니며 비열해져 가는 말[言]들의 세상 속에서도 설렘은 첫사랑의 기억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줬으니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오늘도 나는 지난 세월 그러했듯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와 마음 저 밑바닥으로부터 고동쳐오는 그 느낌을 기다린다. 설렘 없이 하얀 화판 앞으로 다가가는 것은 지는 싸움임을 알기 때문에.
입력 201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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