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안태홍(66회) 교육단상/단 짝(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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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0.10.25)
내가 대신 맞으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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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송초등학교 교장 안태홍
1978년 배다리에 위치한 중앙초교에서 6학년을 담임을 하였을 때의 일이다.
이 교실은 공교롭게도 내가 인천고 졸업반 당시 공부하던 교실이었다.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라 생각하고 어린이들을 더욱 더 열심히 가르치리라고 마음먹었다.
어느 해와 마찬가지로 어린이들의 짝을 남·여 같이 앉도록 했다. 그때는 한 책상에 둘이 나란히 앉아서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렇게 이성끼리 앉혔을 때에 더 깨끗하고 더 조용하며, 학습태도도 바르고 성적도 늘 향상됐다고 기억된다.
그래서 그 해도 예외없이 남·여같이 자리를 배정했다.
담임선생님이 무서워서인지 처음에는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어린이들이 차츰 짝에 대해서 불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른 반은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앉았는데 우리 반만 남녀 같이 앉았다고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학급어린이 회의 시간에도 건의 사항에는 어김없이 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어린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우리학교에서 성적이 가장 좋으면 짝을 바꾸어주겠다’고 하고, 또 한편으로는 ‘5월은 어린이의 달이고 청소년의 달이니까 5월에는 너희들의 뜻대로 자리를 바꾸어주겠다’라고 약속했다.
4월말에 치룬 교육청평가(당시는 인천시 교육청에서 평가를 분기별로 실시)에서 월등한 점수차로 1위를 했기에 5월 1일에 자리를 바꿔 주게 됐다.
당시 우리 학급의 학생수는 62명으로 남자 31명, 여자 31명으로 똑 같았다. 또한 책상도 31개로 딱 맞게 들어와 있었다.
자리를 바꾸기 전에 교실의 사정을 이야기 하고, 누구든지 희망자 남자 1명과 여자 1명은 우선 같이 앉혀주겠다고 이야기를 한 다음 모든 어린이를 복도에 남·여별로 키 작은 어린이부터 순서대로 줄을 세웠다.
“자 누가 같이 먼저 들어가 앉을까?”
잠시 후 정연(가명)이가 앞으로 나와서 “선생님 제가 승균(가명)이와 같이 앉을게요” “승균아, 너는 어때”하면서 승균이의 의견을 물어보는데 정연이는 대뜸 “승균아 같이 앉자” 하면서 승균이의 손을 붙잡고 교실로 들어갔다.
“승균이 찬성한거지?” “네”
아이들이 멍하니 쳐다보다가 웃기도하고 저희들끼리 소근거리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자 이제부터는 키대로 둘씩 짝을 지어 들어가 앉는 거야” 하면서 여학생부터 둘씩 짝을 지어 들여보내고 있는데 3번째 짝이 되는 은정(가명)이가 “선생님 저도 남자아이랑 앉을래요” 하면서 멈춰서서 나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었다.
“은정아, 네가 남학생이랑 앉게 되면 또 다른 한명이 남자랑 짝을 해야 해” “그래도 저는 남자애랑 앉을래요” 하면서 “경수(가명)야. 같이 앉자.” 하고는 경수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다가말다가 하다가 아이들에게 “또 누구 같이 앉을 사람?” 하니까 여기저기서 서로 짝을 하겠다는 아이들이 나와서 나는 아주 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면 너희들이 좋아하거나 앉고 싶은 사람하고 앉아라. 다만 키가 큰 아이는 뒤쪽으로 앉았으면 한다” 하고는 자리를 아예 자유롭게 앉도록 했다.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62명중 52명(26쌍)이 남녀 같이 앉았고 5팀만이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앉았는데 그것도 사실은 남자 여자 짝하는 데서 울고불고 하면서 서로 자리다툼을 하다가 밀려난 아이들이었다.
여기서 나는 자리에 대해 선언을 했다.
“앞으로 자리에 대해서는 선생님께 두 번 다시 이야기 하지 말고, 이후로는 너희들 자유롭게 앉는다. 짝도 마음대로 바꾸어도 좋고 자리도 자유롭게 이동해도 된다”
아이들은 환호했다. 이후로 자리는 약속대로 자유가 주어졌으며 한달도 되지 않아 우리 반 전원은 31쌍의 남·여가 짝이 되어 학년이 끝날 때 까지 함께하였다.
짝을 자유롭게 앉게 한 후 어린이들은 분위기도 좋아지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는 듯 보였다.
우리 반은 어린이들과의 약속으로 과제를 안 해오면 벌을 서거나 사랑의 매를 맞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이날은 모든 어린이가 과제를 다 해결해 왔는데 승균이만이 안 해 와서 앞으로 나와 사랑의 매를 기다리게 됐다.
“승균아, 약속은 약속이니까 벌을 받아야 하지?”
“네”
“자. 칠판에 손대고 바르게 서”
이때였다. 승균이의 짝인 정연이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선생님. 제가 대신 맞으면 안 되나요?” 하면서 나의 대답도 들을 사이도 없이 교실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순간 놀라서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 지금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나온 정연이는 나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승균아, 바보같이 숙제는 안 해와, 들어가 내가 대신 맞을 께” 하면서 승균이를 밀쳐 내었다. 그러자 승균이도 조금은 쑥스러운 듯 “아냐, 네가 들어가. 내가 잘못했으니까 내가 벌을 서야지” 하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둘이는 서로 벌을 서겠다고 밀치며 있었고, 아이들은 자리에서 멍하니 바라보면서 웃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있었고 나는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머리에 정리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나는 둘을 세워놓고 말을 했다.
“정연이의 의리가 참 기특하다. 친구대신 매를 맞겠다고 나서는 것은 매우 용기 있는 일이야. 너희들의 의리를 보고 친구 위하는 마음이 기특해서 이번 한번은 용서해 주마. 앞으로는 절대로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해라”
“선생님 감사합니다”
둘이는 인사를 하고는 손을 잡고는 자리에 들어갔다.
이후 반의 분위기는 더욱 더 좋아졌고, 아이들은 더욱 더 공부를 열심히 하였으며, 9월 이후로는 짝이 전혀 바뀌지 않고 졸업을 맞게 됐다.
후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생일파티를 여는데 정연이가 자기 짝을 초대 안 해서 안 간다고 해 생일파티가 쌍쌍파티가 되었다고 하고, 같이 영화도 보고 즐겁게 다녔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소식이 없어 궁금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잘 살고 있으리라고 믿으며 옛날의 추억에 젖어본다.
2010년 10월 24일 (일) 18: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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