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오광철(53회)의 전망차/오수전(五銖錢)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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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0. 9. 9)
오광철의 전망차 /
오수전(五銖錢)
유다가 예수를 은전 30에 팔고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성전 바닥에 내던지고 자결한다. 그 은전은 성전에서 통용되는 ‘두로’은전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아무 주화든 받는것이 아니라 반드시 특별한 것이었다. 이것을 주조한 지명을 따서 두로은전이라고 했다. BC126년 이후 200여년 통용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주화 이야기가 나온다. 한여인이 잃어버린 한닢 동전을 찾느라 온집안을 뒤져 찾고는 이웃과 잔치했다는 이야기이며 유대인들이 예수를 궁지에 몰기 위해 시저에게 세금을 내는것이 옳으냐고 물었을때 동전을 가져오라고 해서 답변한 이야기 등이다. 그리고 한 가난한 과부가 성전에 헌금한 가장 작은 액수의 동전 이야기도 있다.
이들 주화는 로마와 그리스 혹은 유대의 것들이다. 그러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바빌론과 페르시아의 것도 있다. 이스라엘이 정복자들의 통로였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오늘날 고스란히 역사의 현장에서 발굴되어 후세에 많은것을 이야기해 준다. 주화 양면에는 그림과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앞면에 당시의 지도자 얼굴이 그려지고 후면에 그를 추앙하는 문구나 단위가 써있다.
그런데 이들 주화들은 하나같이 둥글지만 중국것과 비교하여 가운데 구멍이 없다. 이에 비해 중국의 것들은 둥글기는 하되 가운데에 사각의 구멍이 있어 줄로 꿰어 꾸러미를 만들게 되어있다. 이것이 “안은 네모지고 밖은 둥글다”는 내방외원(內方外圓)이다. 이를 취급하는 관리들이 안으로 청렴하고 겉으로 부드럽고 융통성 있음을 나타내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한나라때 부터 사용되었다는 오수전(五銖錢)이 있다. ‘오수’라고 씌여진 銖는 무게 단위인데 오늘날의 약0.65g에 해당된다고 한다. 한나라 무제때 주조되어 이후 900년간 발행되어 이를 오수시대라고도 한다고 한다.
이 오수전이 영종도에서 발굴되었다고 해서 화제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출토되기는 했지만 영종도에서의 발굴은 인천과 중국과의 교역을 재구성하는 요인으로 주목된다는 것이다. 몇닢의 동전이 많은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2010년 09월 09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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